Chef Story 셰프 스토리 / 여경옥 셰프, ‘맛있는 행복’을 요리하는 휴머니즘 아티스트

조용수 기자

philos56@naver.com | 2019-03-10 17: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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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Chef 조용수 기자] 소스는 기본이다. 소스는 발효와 숙성을 원칙으로 하고, 그 전제를 통해 음식이 되어간다. 그 과정이 곧 요리의 내공이 된다. 맛에도 내공이 있다. 보는 맛, 느끼는 맛, 그리고 깨닫는 맛, 그중에서도 가장 으뜸은 사람답게 살아가는 맛일 것이며, 그 맛을 우리는 행복이라고 말한다. 세상사의 가장 큰 복은 더불어, 아울러, 어울려 행복해지는 것이리.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사람에 취하고, 행복한 맛에 취하고, 행복한 문화에 취하려고 오늘도 오감을 부지런히 열어 맛의 우주를 받아들이려 한다. 행복한 요리사이기보다 먼저 행복한 사람이기를 외치는 여경옥 셰프는 ‘어향’이라는 소스처럼 행복의 향이 가득한 휴머니즘 아티스트다.

“시원하고 맛깔스럽게 행복을 말하는 셰프을 본 적이 없다. 행복한 표정만큼 매혹적인 맛을 가진 것은 없다. 중식당 루이는 그런 맛으로 행복을 감염시킨다.”


여경옥 셰프, 그의 중식요리 철학
Q : 소스 하나로 강호를 평정한 요리사로 세간에 알려져 있습니다. 채소에서 찾은 생선의 향, ‘어향’이라고 했던가요? ‘어향’은 옛 조리서에도 기록이 되어있는 등 아직까지 명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향’이 만들어진 계기가 무엇이고, 특징이나 비법을 알려줄 수 있습니까?


A :  제가 만든 소스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특별한 비법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향’은 사천 지방에서 유래된 것으로 우리나라 사람의 입맛에 맞게 현지화하려고 노력했을 뿐입니다. 네 개의 큰 강을 가진 사천 지역은 민물이 많습니다. 큰 강이라는 환경에서 자라는 물고기도 1, 2미터가 되는 등 크고 다양하지요. ‘어향’은 그런 물고기를 요리할 때 사용되는 소스였습니다. 원래는 이름이 없었어요, 가정식 요리였으니까. 청나라 때 어떤 요리사가 요리대회에서 스무 개의 요리를 했고, 그 요리가 각광을 받게 되면서 ‘어향’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생선의 향을 더하게 하는 소스인 어향소스는 그 향이 우리나라 사람의 입맛에도 맞습니다. 요즘 한국인이 설탕을 덜 먹는다 해도 달달하고 매콤한 것을 좋아하지요. 게다가 새콤한 맛도 나고, 짭짤한 맛도 납니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네 가지 맛은 어떤 음식에 결합을 해도 다 괜찮다는 것을 오랜 요리 경험으로 깨달았습니다. 원래는 민물 생선의 비린내를 제거하려고 만들어진 것이지만 지금은 고기나 야채나, 해산물 등 어느 식재료에 갖다놔도 다 어울리는 소스입니다. 결국 현지화에 성공할 수 있다는 식감을 선택하고, 그것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모든 소스의 성공비결이겠지요.

Q : 다양한 요리대회에서도 많은 수상을 하면서 한국 식문화를 발전시킨 공헌이 큽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루이’ 중식 레스토랑의 오너셰프가 되었는데 ‘루이’만의 메뉴나 특징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A : 지역에 관계없이 이 정도 규모의 식당 치고는 메뉴가 대개 적습니다. 적게 하는 이유는 메뉴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하려고 최소한으로 줄인 겁니다. 그리고 특별한 요리는 없습니다. 어느 중식당에서나 먹을 수 있는 기본적인 요리들이지요. 그러나 여느 중식당과 똑같은 것 같은데 다르다는 평가를 많이 받습니다. 메뉴가 적으면 좀 더 정성을 들일 수 있다는 확신을 고객이 평가했다고 믿습니다. 일종의 요리원칙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토끼를 사냥할 때에도 사력을 다하는 사자처럼 작은 요리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는 기본을 잊지 않으려고 메뉴의 공간을 줄인 겁니다. 대신 너무 식상할 수 있으니까 한두 달 사이에 몇 가지 메뉴를 바꾸기는 합니다. 일종의 프로모션처럼 계절에 따라 바꾸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일 년에 한두 번 나갈까 하는 메뉴를 나열하다 보면 요리사가 자주 요리하지 않다 보니 맛이 불확실해지는 오류가 생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식재료의 불확실성이라는 오류를 고객에게 전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고객이 좋아하는 메뉴를 제대로 선택하고, 거기다 최대한 집중하는 게 전략이라면 전략이라고 할까요. 요리사의 입장에서는 몇 백 가지의 음식을 풀어보고 싶지만 그게 도리어 잘하려다 잘못 나오는 역효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Q : 낮에 요리를 하고, 밤에 독학을 하는 등 요리하는 학자로서도 치열한 청년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 열정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등 아직도 공부하는 요리사로 후학의 모범과 표본이 되고 있는데 그 열정의 이유가 궁금합니다.  

A : 늘 좌절하고, 늘 새로운 것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첫 요리대회에서 낙선한 뒤로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절치부심을 하게 된 것은 요리가 단순한 식문화가 아니라 인류를 지탱하는 문화 그 자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행복해지려면 먼저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리가 실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요리가 되어가는 과정에는 인성도 필요하고, 문화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고. 그래서 맛있게 요리만 잘하는 사람이기보다 요리까지 잘하는 사람이고 싶어서 계속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자를 양성하다 보니까 가르치는 재미도 있고요. 가르치다 보니 제가 부족하다는 것을 많이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가르치려고 배우기도 합니다. 공부가 주는 선순환의 즐거움이라고 할까요? 그런 의미에서 제자와 고객에게 깨닫는 바도 많고, 고마워할 때도 많습니다. 저를 늘 긴장시켜 주어서 말예요.

Q : 루이는 부처의 여러 그림으로 유명합니다. 행복이라는 말을 아주 좋아하는 것으로 압니다. 그것이 식당 ‘루이’와 오너셰프로서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 인간의 다양한 표정이 삶에, 살아가는 모습에 직간접으로 투영되어 있는 게 아닐까요? 음식의 맛, 모양, 향기, 그런 것이 다 표정이고, 인간의 마음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에 단맛도 있고, 신맛도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모든 인간은 행복해지려고 사는 것이겠지요. 쓴맛, 매운맛, 그런 맛의 표정도 다 행복을 위해 인간이 거쳐 가는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글자로 맛의 표정을 만들어보려다가 우연히 불교미술하시는 지인을 통해 부처그림으로 인테리어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처의 다양한 표정처럼 고객도 식사를 하고 갈 때 다양한 표정을 짓는데, 잘 먹었다보다 행복했다고 인사하고 가는 고객을 만날 때마다 정말 행복합니다.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저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과 그렇지 않고 만드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에 따라 음식의 결과는 달라지겠지요. 맛을 결정짓는 것은 무엇보다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요리를 하느냐에 달려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실력이 기본이겠지만 그 기본을 형성하는 것은 마음가짐이라 생각해서 오늘도 열심히 행복하려고 요리를 합니다. 기쁘게 먹고 갈 것까지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행복한 음식을 만든다고 믿으면서 말입니다.

Q : 오너셰프로서의 경영철학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A  : 경영자는 맛, 서비스, 운영의 결과 등 모든 것의 뒤에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음식, 고객, 서비스,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고 생각해요. 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텔레파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교감이 평행을 이루는 삼각형으로 이뤄질 때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신념은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정말로 정성과 맛을 쏟아 부은 음식이라면 그것을 제공하는 직원도 행복해질 것이고, 고객 또한 행복하게 그 맛에 답례를 하는 텔레파시가 이뤄지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경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정성으로 행복을 요리하고, 그 행복을 최선을 다해 경영하고 서비스하는 것이 고객이 아닌 사람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선순환의 구조가 이뤄지다 보면 직원이나 고객이 가져갈 프리미엄은 저절로 형성된다고 생각해요. 요리사로서 뿐만 아니라 경영자로서 고객에게 행복하다는 소리를 들을 때가 제게는 가장 큰 맛이 드는 때입니다. 음식은 결국 오감과의 교감이니까요. 그 교감의 철칙은 기본과 더불어 직원, 고객이 각자의 자리에서 평행하게 행복해지는 일이겠지요.

Q : 낮에는 일을 하는 예술가, 밤에는 공부하는 학자와 같은 일상입니다. 요리를 하는 입장에서 주는 기쁨을 많이 깨달았다는 지론 때문이겠지요? 셰프가 되려는 후학이나 후배에게 어떤 조언을 들려줄 수 있을까요?
A : 외식과학고등학교에서 특강을 간혹 합니다. 그때도 얘기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기라고 생각합니다. 요리는 하루 이틀에 기본기가 다져지지 않습니다. 우연히 영감이나 아이디어, 열정과 창의성으로 갑자기 벼락 맞은 듯 성장하는 직업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최소한 10년 이상 해서 “아, 이것이 요리다”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때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삼 년, 혹은 삼사 년의 요리 경력으로 스타셰프가 되어야지 하는 생각은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어요.

우연한 행운으로 목표한 바를 이루고 종국에 소위 스타셰프가 될 수도 있겠지만 오래가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주는 깨달음은 마음가짐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 무수한 담금질과 오랜 세월에 거쳐 숙성되고 발효되는 것이며, 그것을 진정 감각으로 깨달을 때에야, 소위 내공이 쌓인 다음에야 오는 거라고 믿습니다. 저도 아직까지 완전하게 그 주는 기쁨을 깨달았다고 할 수 없겠지만 어떤 순간마다 그런 기쁨이 밀물처럼 확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 기쁨이 쌓이고 쌓여야 합니다. 그런 기쁨을 깨닫기도 전에 성공하고, 나중에 방황을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큰 손실이라 생각해요. 맛은 냉정합니다. 맛은 인재를 평가하지 않고 오직 음식을 평가합니다.

숙성되고 발효되지 않아 생기는 오류를 사람의 입맛은 금방 간파합니다. 그런 저항을 주는 기쁨으로 이겨나갈 때 내공이 생겨난다고 믿습니다. 어느 순간에 괜찮은 요리사가 되기를 바라기보다 자신도 모르게 괜찮은 요리사가 되는 기능직이면서 장인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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