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단아 기자의 음식 이야기> 파리에서 동치미의 겨울잠

손단아

cooknchefnews@naver.com | 2022-01-24 16:49:51

- 한겨울 땅에 묻힌 김칫독에서 사각사각 퍼놓은 동치미에 담담한 메밀국수와 절임무, 오이, 배, 잣, 수육 등을 얹어 먹으면 머리가 정신없이 시려워서 추위를 잊을만도 하다.

[Cook&Chef=손단아 기자] 이북땅은 척박하고 추워서 겨울이 되면 많은 것들이 잠든다. 사철이 뚜렷한 한국에 살다와서 그런지, 이곳 프랑스의 겨울은 참 온화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손꼽을 만큼 적고 잔디는 놀랍게도 사계절 푸르다. 새벽곁에 잠시 얼었다 녹는 일이 반복될 뿐, 이끼와 검은 흙 사이로 겨울 뿌리들이 아늑하다.

한 겨울이지만 레깅스만 입고 조깅을 하는 사람들을 찾는 일도 어렵지 않다. 이제 막 프랑스도 꽃 봉우리가 하나 둘 여물기 시작했고, 곧 몇 번의 추위만 지나 보내면 봄이 올듯하다. 음원 강자 ‘아이유’의 ‘겨울잠’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때 이른 봄 몇 송이 꺾어다 두면, 긴 잠 자고 나올 때쯤엔 예쁘게 피어 있겠다’.

최근 집안의 고추장독 자리를 마련하느라 냉장고 대란이 있었다. 별스럽지 않게 겨울을 보내다가 냉장고에서 밖으로 쫒겨난 동치미가 밤사이 얼어버릴것은 생각치 못했다. 겨울은 겨울일까, 산책을 하다가 생전 얼지 않았던 호수가 언 것을 보고 아차, 싶어 집으로 와보니 역시 살얼음이 낀 백동치미가 시린 겨울잠을 자고 있었다.

이때다, 이냉치냉 ! 냉면을 먹어야겠구나. 냉면은 『규합총서(閨閤叢書)』라는 고조리서에도 등장하는 오랜 전통음식이다. 주 재료는 겨울에 얼은 동치미요, 면의 주원료는 춥고 척박한 땅에서 구황작물로 재배되는 메밀이렸다.

요즘에나 냉면을 여름에 먹지 1809년 쓰여진 냉면의 역사에서 그것은 ‘이냉치냉’의 정점이었을터다. 그러니 그 음식이 별미도 별미겠지만 극한의 추위와 대항하는 극냉음식이라 할 수 있겠다. ‘이열치열’ 以熱治熱 도 같은 맥락으로 ‘열(熱)은 열로써 다스린다’는 ‘제철의 것, 별나지 않은 것을 먹어야 건강을 지킨다’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있다.

한겨울 땅에 묻힌 김칫독에서 사각사각 퍼놓은 동치미에 담담한 메밀국수와 절임무, 오이, 배, 잣, 수육 등을 얹어 먹으면 머리가 정신없이 시려워서 추위를 잊을만도 하다.

프랑스에서 그리운 한국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냉면이다. 그 삼삼하면서 깊은 무맛의 육수를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물 건너온 냉면육수는 슬픈 맛이 나고 마음잡고 육수를 우려낼 엄두가 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동치미 언 김에 냉면 먹는다(?)’는 말을 떠올리며 뼈를 우리기 시작한다. 닭 뼈, 소 뼈를 따로 푹 고아 낸 다음 찬 곳에 하룻동안 굳혀 거른다.

동치미 육수와 뼈육수를 섞어서 냉한 곳에 살얼음지게 둔다. 삶은 계란과 바삭하게 구운 돼지 삼겹, 채 썰은 백김치와 지게미로 절인무까지 곁들이면 완성. 맑은 육수에서 스치는 담백한 육향肉香과 무, 배추의 아삭한 겨울 맛은 이 계절을 기다리게 만들만큼 독보적이다. 막걸리의 맑은 웃물을 침잠히 기다리면 연둣빛 청량함이 가득 퍼지는 청주도 ‘이청치청’ 以淸治淸 으로 곁들인다.

이곳에서 낯선 배추로 김치를 담그며 살아보니 나라, 언어, 계절과 사람이 바뀌어도 음식은 내 손을 따라다닌다는 것을 느낀다. 어떻게든 이곳 재료로 내 입에 맞는 음식들을 지어내는 것을 보니, 많은 이가 빈손으로 여행하는 요리사들을 동경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한국에서는 그리 흔하던 청각, 액젓, 천일염, 고추지를 어렵지 않게 물김치 속에 챙겨 넣었는데 그 무엇도 쉽고 저렴하게 구할 수 없는 프랑스에서도 그때의 맛을 기어이 꺼내어 놓는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으라는 말처럼 향수로 인한 허전함에는 그 처방이 명확하다. 동치미 한사발에 메밀면을 마시며 겨울잠과 향수병을 쫓아본다. 곧 봄이다.

동치미 레시피
* 재료
배추 3k, 히말라야 핑크솔트 200g, 멸치액젓or느억맘(nước mắm) or fish sauce 400ml/ (채식용)소금물, 무 500g, 당근 200g, 배 or 사과300g, 마늘 100g, 생강 30g, 대추 20g
쌀죽 (갈은 밥) 50g
* 만드는 법
1. 소금은 ¼을 물 3C에 풀고 반을 자른 배추를 적신 뒤 켜켜이 소금을 뿌려서 담근다.
6시간 동안 간간히 뒤적이며 절인다.
2. 무와 당근의 길이대로 길게 편을 썰어서 액젓(비건일 경우 소금 50g+물 400ml)에 절인다.
3. 절은 배추는 흐르는 물에 2번 헹구어 물기를 30분 받힌다.
4. 사과 반쪽과 마늘은 얇은 편으로 썰어둔다.
5. 배추 사이사이에 절인 무, 당근, 사과편, 마늘편을 끼워넣는다.
6. 사과 반쪽과 생강, 밥(쌀죽)을 믹서기에 곱게 갈아 둔다.
7. 믹서기에 갈은 채소즙과 무, 당근을 절였던 액젓을 섞어서 물 2L에 풀어준다.
8. 고운 채반에 7번의 물을 거른 다음, 물 13L와 섞는다.
9. 국물이 간간하다는 느낌이 들어야 동치미에 골가지가 끼지 않는다.
10. 마지막으로 막걸리 200ml혹은 소주100ml를 섞어준다. 생막걸리는 유산균이 많아
초기발효를 안정적으로 돕고 자연탄산이 부드럽게 생긴다.
11. 절여서 채소를 끼워둔 배추를 통에 담고 속이 흩어지지 않도록 천천히 국물을 부어준다.
12. 상온에 3일, 냉장고에서 1달 숙성시키면 먹을 수 있다.
13. 냉면용은 2달이상 냉장고에서 숙성시키면 자연산미가 올라와서 더욱 맛있다.


새하얀 겨울 한 숨 속에다 나의 ‘동치미’를 담았어-
줄곧 잘 참아내다가도 가끔은 철없이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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