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초여름 밥상의 어린 무, 열무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 2026-06-22 16:27:48
[Cook&Chef = 서진영 기자] 6월의 밥상에는 초록이 많다. 그중 열무는 여름이 시작될 때 가장 먼저 손이 가는 채소다. 손끝에 닿은 잎은 부드럽고, 줄기를 꺾으면 수분이 맺힌다. 잘 익은 열무김치는 한입 씹을 때 아삭함이 먼저 오고, 뒤이어 새콤하고 시원한 국물이 입안을 적신다. 더운 날 보리밥에 비벼도 좋고, 국수에 얹어도 좋다. 살얼음 동동 떠 있는 열무물김치 한 그릇은 반찬보다 여름의 입맛을 깨운다.
열무는 어린 무를 뜻으로, 무가 다 자라기 전의 어린 잎과 줄기를 먹는 채소가 열무다. 뿌리보다 잎과 줄기를 중심으로 먹고, 무청보다 조직이 연하며 푸른빛이 살아 있다. 김치와 물김치가 익숙하지만, 나물로 무치거나 데쳐 말려 시래기 묵나물로도 활용된다.
열무는 십자화과에 속하는 초본식물로,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의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으로 전해졌고, 중국에는 기원전 400년경 무에 관한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 전래와 함께 삼국시대부터 재배되기 시작했고, 고려시대에는 중요한 채소로 여겨졌다.
봄에는 약 40일, 여름에는 약 25일이면 수확할 수 있어 연중 여러 차례 재배가 가능하다. 5월부터 8월 사이에 많이 파종하며, 여름에는 시원하고 아삭한 식감을 살리는 물김치로 담근다. 6월의 초여름 잎과 줄기에 수분이 살아 있을 때 맛이 좋다.
열무김치가 여름 김치로 사랑받은 이유는 오래 두고 먹는 김장김치와 달리 빠르게 담가 시원하게 익혀 먹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여름철에는 기온이 높아 젓갈을 많이 쓰지 않고, 밀가루 혹은 감자풀을 쑤어 마늘·생강·붉은 고추·소금·새우젓을 조금 더해 담근다. 풀은 열무의 풋내를 누그러뜨리고, 김치의 숙성을 도와 젖산 발효를 살린다. 국물은 맑고, 줄기는 산뜻하게 씹히며, 익을수록 새콤한 맛이 살아난다.
열무 잎에는 비타민 A와 C, 필수 무기질이 들어 있어 땀을 많이 흘리는 계절의 무기질 보충에도 도움이 된다. 보리밥과 열무김치의 조합도 그래서 오래 사랑받았다. 보리밥의 구수함에 열무김치의 새콤한 국물이 스며들면 밥 한 그릇이 금세 비워진다. 최근에는 열무의 플라보노이드 성분도 주목받고 있다. 국내 재배 열무에서 플라보노이드 배당체가 확인되며, 열무는 단순한 여름 반찬을 넘어 기능성 채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경기와 수도권에서는 열무김치, 열무비빔밥, 열무냉면, 열무국수로 열무를 즐긴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열무는 일산열무다. 일산은 한강변의 비옥한 충적토를 바탕으로 열무 산지의 이름을 얻었다. 1960년대 이후 시설채소 재배가 발달하면서 서울과 수도권으로 신선한 열무를 당일 출하했고, ‘열무’ 하면 ‘일산열무’를 떠올릴 만큼 소비지와 가까운 산지의 힘이 컸다. 일산열무는 지리적표시 제115호로 등록되며 품질과 명성을 인정받았다.
충청도에서는 열무를 담백하게 담는다. 충청도 김치는 젓갈을 쓰기도 하지만, 소금으로 간을 맞춰 은은하고 담백한 맛을 낸다. 열무김치와 나박김치 같은 여름 김치에서도 양념을 과하게 하지 않고, 여린 줄기 맛과 국물의 가벼운 감칠맛을 살린다.
강원도와 경북 일부 지역에서는 밀가루가 아닌 감자풀을 쑤어 열무김치를 담는다. 강원 산간과 고랭지권에서 감자는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였고, 열무감자물김치처럼 감자풀을 활용해 열무김치를 담는 방식이 전해진다. 감자를 쪄 풀을 쑤면 국물에 부드러운 농도가 생겨 찹쌀풀이나 밀가루풀과는 다른 구수함이 있고, 열무의 풋내를 누그러뜨리는 데도 좋다. 경북 향토음식 자료에도 열무와 감자, 양파, 붉은 고추를 넣어 만드는 방식이 소개돼 있다.
감자풀로 쑤는 열무김치는 사찰음식에서도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사찰음식은 젓갈의 감칠맛에 기대기보다 채소와 풀국, 장류, 소금의 균형으로 맛을 잡는다. 감자풀은 열무김치의 국물을 거칠지 않게 만들고, 익으면서 고소한 맛을 더한다. 열무의 줄기 맛, 감자의 포근한 질감, 시원한 국물이 한 그릇 안에서 어우러진다.
사찰 열무물김치
재료
열무 1단, 청고추 3개, 홍고추 4개, 다진 생강 1큰술, 감자 1개, 다시마 5cm 3장, 밀가루 2큰술, 고춧가루 1/2컵, 굵은소금 1/2컵, 물 3L, 간장 3큰술, 소금 4큰술
조리 방법
1. 열무는 뿌리 밑동에 묻은 흙을 제거하고, 굵은 뿌리는 반으로 갈라 손질한다.
2. 손질한 열무는 길이 7cm로 썬 뒤, 풋내가 나지 않도록 미리 받아 둔 물에 살살 흔들어 씻는다. 물기를 제거한 뒤 굵은소금으로 절인다.
3. 감자는 껍질을 벗기고, 청고추와 홍고추는 어슷하게 썬다.
4. 냄비에 깎은 감자 1개, 다시마 5cm 3장, 물 1.2L를 넣고 감자가 익을 때까지 삶는다.
5. 감자가 익으면 다시마를 건져내고, 감자와 감자 삶은 물을 식힌다. 여기에 밀가루를 풀어 감자 밀가루풀을 쑨다.
6. 감자 밀가루풀이 식으면 홍고추를 믹서에 갈고, 다진 생강, 소금, 간장을 넣어 열무김치 양념을 만든다.
7. 열무가 절여지면 물에 헹군 뒤 수분을 빼고, 6의 양념에 열무를 살살 버무린다.
8. 버무린 열무를 통에 담고 김치물에 열무가 잠길만큼 부어주고 청홍고추 고명을 올려 완성한다.
주의사항
* 열무는 손이 많이 가면 풋내가 날 수 있어 소금간을 할 때 켜켜이 넣어 절인다.
* 감자를 삶은 물은 꼭 식힌 뒤 밀가루를 풀어야 응어리가 지지 않는다.
* 감자 밀가루풀도 완전히 식힌 뒤 사용해야 김치가 쉽게 상하지 않는다.
* 열무김치를 완성하면 보관통에 담아 윗면이 공기와 많이 닿지 않도록 한다.
* 실온에서 하루 보관한 뒤 냉장 보관하면 시원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전라도의 열무김치는 또 다른 맛을 낸다. 전남 지역에는 여름에 붉은 고추 대신 풋고추와 식은 밥을 갈아 초록빛이 나는 열무김치를 담그는 방식이 있다. 풋고추의 산뜻한 매운맛과 밥의 부드러운 농도가 열무에 감긴다. 전주식 열무김치도는 씨를 뺀 붉은 고추와 생강, 마늘을 돌확에 갈고, 거의 갈아졌을 때 밥을 넣어 죽처럼 만든 뒤 절인 열무와 버무린다. 이렇게 담근 열무김치는 한여름에 국수를 말아 먹거나 보리밥에 비벼 먹는 서민적인 김치로 국물은 자작하고, 맛은 새콤하며, 밥알에서 온 부드러운 단맛이 남는다.
경상도 김치는 다른 지역보다 마늘, 고춧가루, 젓갈, 소금을 강하게 써 맵고 짠맛이 강한 편이다. 국물은 많지 않은것이 특징이라 입맛 안에서 조금 더 진한 양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경북의 열무감자물김치처럼 감자를 활용한 물김치류도 있다.
북부 지역의 열무김치는 국물이 많은 물김치 형태가 많다고 설명된다.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고춧가루와 마늘 사용량이 많아지는 경향이 있다. 이 차이는 열무라는 식재료가 지역에 따라 얼마나 유연한지를 보여준다. 국물을 넉넉히 부어 청량하게 먹고, 양념을 더해 밥반찬으로 먹는다. 열무는 저장성보다 계절감이 강한 채소라 지역의 손맛이 더 잘 드러난다.
매력은 크고 화려한 맛에 있지 않다. 잎은 여리고 줄기는 아삭하다. 잘 익은 국물은 혀끝을 가볍게 깨우고, 보리밥에 비비면 여름 밥상이 단숨에 시원해진다. 냉면 위에 올리면 면의 차가운 맛을 살리고, 비빔국수에 얹으면 고추장의 무거움을 덜어준다. 김치통에서 막 꺼낸 열무김치의 푸른 향은 더운 계절의 밥상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맛이다.
한 단의 열무는 작지만 그 안에는 여름을 견디는 지혜가 담겨 있다. 아삭한 줄기와 새콤한 국물, 차갑게 식힌 한 그릇의 청량함. 열무가 6월 식재료로 사랑받는 이유다.Cook&Chef / 서진영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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