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nese Chef Story / 중식 명가 대가방, 대장리(戴長利) 셰프 : 진심으로 해온 중식 요리 반백 년 인생
온라인팀 기자
cooknchefnews@naver.com | 2018-04-29 15:16:41
집이 주인의 모습을 닮아 가듯, 셰프의 공간도 그러하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군더더기 없이 소박하면서도 멋이 묻어나는 그의 공간을 번갈아 살피며 문득 이 사실을 깨닫는다. 명성대로라면 화려하기만 할 것 같던 나의 예상을 보기 좋게 뒤집은 곳이니 맛이 더욱 궁금해진다. 서울의 중식 명가 ‘대가방’에서 우직하게, 때론 감각적인 요리로 50여 년을 한결같이 걸어온 대장리(戴長利) 셰프를 만났다. writer_ 오미경 기자 / photo_ 김상근 기자
Chinese Chef Story
진심으로 해온 중식 요리 반백 년 인생
중식 명가 대가방, 대장리(戴長利) 셰프
바람이 불고 비가 와도,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대장리 셰프의 일과는 주방을 둘러보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내로라하는 경력의 후배 셰프들이 ‘대가방’의 주방을 끌어가고 있음에도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여전히 이곳을 호령하고 있다. 대장리 셰프의 성을 따서 이름 지은 중식 레스토랑 ‘대가방’이 20년 넘게 서울의 대표 중식 명가라는 평가를 얻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 그의 이런 부지런함을 빼놓을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대장리 셰프는 한국의 중식 요리계의 전설로 불리는 ‘중식 4대 문파’(아서원, 홍보석, 호화대반점, 신라호텔 중식당) 계보 보다 앞선 1966년부터 중식 업계에 몸담으며 한국 중식 요리의 선대를 이끈 장본인 중 한 명이다. (‘아서원’의 등장은 1920년대였다.) 대만 국적의 화교인 그는 1950년 부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일찌감치 이 일을 시작했다. 요리하려면 하나부터 열까지 몸을 움직여야만 가능했던 시절, 선임들의 끊이지 않는 호통 속에서 일을 배우며 자신을 더욱 채찍질해 온 그에게 부지런함은 자연스레 길러진 무기가 되었다.
“당시엔 화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왕 시작한 일이니 잘해보자 싶었어요. 그래서 부산에서 유명했던 ‘동아반점’에 들어가 기본적인 기술을 익혔고, 1968년엔 서울 명동의 세종호텔에 특채로 입사할 기회를 얻었어요. 그때부터 여러 스승께 종류별로 요리 기술을 배우며 고급연회요리까지 섭렵해 완성형 수준에 다가갔지요.”
1981년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대장리 셰프는 이후 63빌딩 내 중식당 ‘목련’과 리베라호텔 조리부장 등을 거치며 조직 관리의 역량을 갈고 닦았다. 그리고 노력 끝에 1996년 4월 압구정동 광림교회 맞은편에서 처음으로 ‘대가방’의 문을 열었다. 홀로서기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장사도 잘 되었다. 그러나 성공은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외환위기가 들이닥치고 임차해 있던 빌딩이 망하면서 그는 허무하게 첫 가게에서 손을 떼야 했고, 한동안 깊은 방황을 했다. 하지만 다행히 아내의 응원 덕분에 나락으로 떨어진 자존감을 간신히 부여잡은 그는 다시 심기일전하여 1999년 신사동에 자그마한 가게를 열 수 있었다. 이후 2007년 지금의 논현동 본점으로 ‘대가방’을 이전, 2008년엔 압구정동 직영점까지 문을 열며 지금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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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오래도록 사랑받는 것’은 ‘신뢰’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단 점에서 ‘대가방’의 명성 역시 같은 맥락으로 설명된다. 고집스레 지켜온 대장리 셰프의 조리 원칙이 신뢰의 맛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도 맛집이 많기로 유명한 논현동 일대. 그 안에서도 유독 손님들로 붐비는 ‘대가방’의 시그니처 메뉴를 살펴보면 그 맥락을 하나씩 이해할 수 있다. 바로 탕수육이다.
이곳에서는 20년 넘게 생고기만을 취급하여 매일 수작업으로 손질한 탕수육을 만들고 있다. 덕분에 거의 모든 손님의 테이블에 탕수육이 하나씩 올라가 가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을 만큼 인기가 많은 메뉴인데 주문과 동시에 조리에 들어가므로 미리 튀겨 놓는 경우가 없다. 비법은 차치하더라도 이것이 바로 달콤한 소스 옷이 입혀져 나오는데도 바삭함을 그대로 간직한 ‘대가방’만의 탕수육을 선보일 수 있는, 그래서 ‘오래도록 사랑받는 신뢰의 메뉴’가 만들어진 이유이다. 그밖에도 대가탕면, 난전완자 등의 인기 메뉴를 비롯해 중국식 김치로 알려진 자차이 역시 오랜 시간이 걸려서라도 독자적인 방식으로 짜지 않게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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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리 셰프는 이처럼 '무엇보다 신선한 식재료를 쓰고, 장사가 잘 된다고 해서 재료가 변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레시피를 철저히 따라 음식 맛에 차이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조리 원칙이라 말한다. 여기에 더해 '누가 먹든 최선을 다해 성의 있는 요리를 만들고,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최고의 요리를 만든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는 게 그의 변치 않는 신념이다.
오너셰프이기도 한 그의 고집은 경영에의 원칙으로도 연결되고 있다. 그는 경영자가 먼저 요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주방과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요리를 알지 못한 채 운영에만 신경 쓴다면 결국 전체를 이끄는 안목을 가질 수 없다고 꼬집는다. 믿고 찾는 손님들의 입맛을 지키기 위해선 주방 인력이 자주 바뀌는 일을 지양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라도 앞서 말한 노력이 필수라는 얘기다. 또한, 틈날 때마다 음식에 대한 손님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도 경영자로서 그의 몫이다. 한국인의 식성에 맞는 메뉴를 구성하고 개발하여 보다 대중적인 ‘대가방’을 지향해 온 그는 지금도 현장에서의 역할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진심’으로 하는 요리
오는 5월엔 ‘대가방’의 새로운 직영점이 서울 퇴계로에 문을 연다. 현재의 명성을 이어가기 위한 막바지 준비로 대장리 셰프는 요즘 시간을 쪼개어 쓰고 있다. 여전히 날 서 있는 셰프로서의 그의 의욕과 감각을 느끼며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전할 말이 있는지 물었다. 행여 잔소리로 들릴까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천천히 할 말을 곱씹는 그의 모습에서 함께 하는 이들을 향한 애정과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들이 동시에 느껴졌다.
“과거의 힘듦을 젊은 친구들에게 본보기라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시대가 아무리 흘러도 셰프에게 성실함과 제대로 된 습관,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많은 후배가 최종적으로 자기 공간을 가지고 일을 해보는 게 꿈이라고 하는데, 지금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개인 사업을 해도 마찬가지예요. 어디에 있든 자신을 먼저 성숙하게 만드는 게 우선이지요. 그런 점에서 선배들의 오랜 지혜나 노하우, 정신력을 배우는 것은 도움이 될 겁니다.”
그는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얻은 노하우 외에 요리법을 공개 전수하기도 하며 꾸준히 후배들을 격려하고 있다. 결국, 함께 걸어가는 길이고, 언젠가 자신의 명성을 물려줘야 할 때가 올 것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승으로부터 얻은 가장 큰 교훈이 ‘진심으로 요리하는 것’이라 설명하는 대장리 셰프. 50년을 넘게 그곳을 바라보며 걸어왔지만, 그는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다. 자신의 진심을 이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갈 또 다른 누군가를 기다리며.
[Cook&Chef 오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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