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 즉흥과일클럽 x 제주의 시트러스, 식탁 위에서 다시 태어나다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3-26 17:29:35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제주의 감귤은 더 이상 단순한 과일이 아니다. 즉흥과일클럽에서 진행된 시트러스 체험 프로그램은 만감류를 통해 사람과 감각, 그리고 식재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연결하는 자리였다.
이날 식탁 위에는 금귤, 청견, 레드향, 팔삭, 블러드오렌지, 한라봉까지 다양한 만감류가 올랐다. 익숙한 이름들이었지만, 한 자리에서 비교하며 맛을 경험하는 과정 속에서 각각의 개성과 구조가 또렷하게 드러났다.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의 자기소개로 시작됐다. 각자는 식탁 위 만감류 중 하나를 선택해 자신의 별칭으로 삼고, 이후 체험이 진행되는 동안 서로를 그 이름으로 부른다. 감귤은 이 순간부터 식재료가 아닌, 관계를 연결하는 언어로 기능한다.
이어 참가자들은 만감류에 대한 설명을 한 줄씩 읽어가며 오늘의 주제를 공유했다. 텍스트로 이해한 감귤은 곧바로 미각 경험으로 이어졌고, 지식과 감각이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를 형성했다.
이날 체험에는 제주 시트러스의 최희선 마케팅 담당께서 참여해, 제주 신례리 농민들의 마음이 ‘함께(혼디)’ 모여 탄생한 시트러스 양조장에 대해 직접 소개했다. 단순한 생산을 넘어 지역 농민들의 연대와 가치가 담긴 공간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곳에서 소개된 술은 두 가지였다.
먼저 ‘신례명주’는 원액에 물을 거의 타지 않고 최고급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술로, 제주 감귤의 싱그러운 향과 은은한 오크 향미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감귤의 산뜻한 향이 중심을 잡고, 뒤이어 오크에서 오는 부드러운 깊이가 더해지며 균형 잡힌 구조를 보여준다.
이어 소개된 ‘마셔블랑’은 ‘마시다’와 화이트 와인을 뜻하는 ‘블랑’의 합성어로, 보다 가볍고 편안한 분위기를 지향한 만감류 기반 화이트 와인이다. 껍질을 벗긴 제주 감귤과 한라봉을 100% 착즙해 발효시키고, 여기에 꿀벌이 채취한 감귤꽃꿀을 더해 숙성한 것이 특징이다. 한 모금 머금으면 달콤쌉싸름한 과즙과 함께 봄날의 꽃향기를 연상시키는 풍미가 은은하게 이어진다.
이 두 술은 현장에서 만감류와 함께 페어링되며, 과실과 발효주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보여줬다. 감귤의 산미와 당도는 술의 향을 확장시키고, 술은 다시 과실의 풍미를 더욱 또렷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특히 이날 인상적이었던 것은 각 만감류가 지닌 명확한 개성이었다.
블러드오렌지는 기존 감귤류에서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향과 깊이를 보여
줬다. 단순한 산미를 넘어, 농도감 있는 과실 향과 층위가 겹쳐지며 구조적인 맛을 형성했다. 입안에서 퍼지는 여운 또한 길게 이어지며 다른 만감류와의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팔삭은 쌉싸름한 맛이 중심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었다. 첫맛에서 느껴지는 쌉싸름함이 오히려 입안을 정리해주며, 뒤따르는 산미와 균형을 이루었다. 강렬하지 않지만 분명한 방향성을 가진 맛이었다.
이 외에도 금귤의 산뜻한 껍질 향, 청견의 안정된 당산 균형, 레드향과 한라봉의 농도감 있는 단맛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시트러스의 스펙트럼을 확장시켰다.
체험에서는 감귤을 활용한 다양한 양념도 함께 제공됐다. 귤식초, 만감류 소금, 비건 마요네즈, 미소와 귤을 활용한 드레싱 등은 동일한 재료라도 가공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참가자들은 이를 만감류와 함께 곁들여 먹으며 조합에 따른 맛의 변화를 직접 경험했다.
또한 노지에서 재배된 감귤, 즉 ‘노지밀감’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자연 환경에서
자란 감귤은 균일하지 않지만, 그만큼 계절성과 지역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번 즉흥과일클럽 x 시트러스 체험은 감귤을 소비의 대상에서 경험과 해석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사례였다.
이름을 부르고, 읽고, 맛보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만감류는 하나의 언어이자 매개로 작동한다. 제주의 시트러스는 그렇게, 식탁 위에서 다시 정의되고 있었다.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 쿡앤셰프(Cook&Chef).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