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치킨, 전설의 막을 내리다...윤종계 맥시칸치킨 창업주 별세

제조리 기자

cnc02@hnf.or.kr | 2026-01-08 22:09:01

이미지 생성: ChatGPT (OpenAI) 제공 / Cook&Chef 제작

[Cook&Chef = 제조리 기자] 한국 외식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해온 거인이 잠들었다. '양념치킨의 아버지'로 불리던 맥시칸치킨의 창업주, 故 윤종계 씨가 지난 12월 30일 향년 75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의 부고는 단순한 기업가의 죽음을 넘어, K-푸드의 발전을 이끌었던 혁신가의 퇴장을 의미한다.

주방의 열기를 아는 조리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하나의 새로운 메뉴가 탄생하고,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아 문화로 자리 잡기까지 얼마나 험난한 과정이 수반되는지를. 윤종계 창업주가 걸어온 길은 바로 그 역사의 증명이다. 그는 식어버린 프라이드치킨의 한계를 극복하고, 조리과학적 통찰과 한국적 미각의 재해석을 통해 '양념치킨'이라는 불멸의 유산을 남겼다.

이 기사는 고인의 삶을 단순히 추모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붉은 혁명'이 한국 식문화와 외식 산업에 미친 영향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치열한 고민과 과학적 원리, 그리고 한 개인의 철학이 어떻게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는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식어버린 튀김닭,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다

1980년대 대구, 윤종계 창업주가 '계성통닭'을 처음 열었을 당시 시장의 주류는 프라이드치킨이었다. 바삭하게 튀겨낸 닭은 매력적이었지만, 시간과의 싸움에서 무너졌다. 갓 나온 뜨거운 치킨은 완벽에 가까웠지만, 식으면서 눅눅해지고 맛이 떨어졌다.

조리과학의 관점에서 이는 필연적이었다. 튀김옷의 바삭함은 고온의 기름에서 밀가루 반죽의 수분이 증발하며 형성되는 다공질 구조 덕분이다. 시간이 지나면 공기 중의 습기와 닭고기 내부의 수증기가 이 구조를 다시 채워 눅눅해진다. 닭고기 속 지방은 응고하여 불쾌한 기름 막을 형성하고, 잡내와 퍽퍽함이 도드라진다. 윤종계 창업주는 이를 단순한 음식물 쓰레기가 아닌, 해결해야 할 '기술적 과제'로 보았다.

김치에서 찾은 해답, 조리과학으로 완성된 '붉은 마법'

문제의 본질을 파악한 그의 시선은 '김치'로 향했다. 김치 양념의 강렬한 맛과 향이 식은 닭고기의 단점을 가릴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였다. 그는 마늘과 생강의 향으로 잡내를 제어하고, 고추장의 발효된 감칠맛을 기본 베이스로 삼았다.

여기에 물엿의 활용이 혁신을 완성했다. 물엿은 소스의 점성을 높여 튀김옷에 흘러내리지 않도록 접착제 역할을 했다. 이는 소스를 코팅하여 공기 중의 수분 침투를 막고 눅눅해지는 현상을 지연시켰다. 물엿은 가열 없이도 윤기를 부여해 시각적 매력을 극대화했다. 이 '붉은 마법'은 프라이드치킨의 운명을 바꾸었다.

또한, 치킨무의 조합은 양념의 강렬한 맛에 피로해진 미각을 새롭게 했다. 아삭한 식감과 산미를 가진 치킨무는 입안을 개운하게 씻어내어 다음 치킨 조각을 향한 식욕을 돋우었다. 오늘날 '양념치킨과 무'의 페어링은 그의 주방에서 완성된 것이다.

레시피를 넘어 시스템을 설계하다: 프랜차이즈의 개척자

윤종계 창업주의 위대함은 뛰어난 레시피 개발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1985년 '맥시칸치킨'을 설립해, 성공 방정식을 '시스템'으로 표준화했다. 이는 한국 외식 프랜차이즈 산업의 여명기를 연 사건이었다.

그의 시스템 핵심은 '염지'와 '표준화된 조리법'이었다. 닭고기를 미리 염지액에 재워두는 과정은 단순히 밑간을 넘어, 단백질 구조를 변화시켜 육질을 부드럽게 하고, 보수력을 높였다. 이는 어느 가맹점에서 조리하든 일정한 맛과 품질을 보장하는 기술이었다.

또한, 그는 치킨 업계 최초로 TV 광고를 도입했다. '치킨'을 가족 외식과 야식의 대명사로 각인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한때 전국 가맹점 수가 1,700여 개에 달했던 것은 그의 시스템이 강력했음을 증명한다. 이후 등장한 수많은 브랜드들이 그의 기술과 운영 시스템의 영향을 받았다.

독점하지 않은 유산, K-치킨 생태계를 키우다

그의 철학은 놀라웠다. 그는 양념치킨 소스에 대한 특허를 출원하지 않고, 독점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대신 '확산'과 '공유'의 길을 선택했다.

생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을 때 그는 "나 혼자 잘 살기보다 산업 전체를 키우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그의 레시피가 퍼져나가며 수많은 브랜드들이 양념치킨을 변주하기 시작했다. 간장치킨, 불닭치킨 등 다양한 메뉴의 등장은 그의 '기회의 장' 위에서 가능했다.

그의 선택은 한국 치킨 시장의 파이를 키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치킨집을 창업했고, 관련 산업이 동반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그는 "치킨으로 생계를 잇는 사람들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는 현대 기업가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대구에서 세계로, '치맥' 문화의 시발점이 되다

작은 통닭집은 대구를 '양념치킨의 발상지'로 만들었고, '대구치맥페스티벌'의 뿌리가 되었다. 그의 도전이 없었다면, '치맥' 문화는 지금과 같은 파급력을 갖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평범한 음식 뒤에 이런 역사가 있는 줄 몰랐다", "치킨 한 조각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추모 메시지가 이어졌다. 그의 유산은 미각을 넘어 문화적 코드로 자리 잡았다. 한국인의 희로애락과 함께해 온 소울푸드, 그 출발점에 윤종계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제 양념치킨은 국경을 넘어 K-푸드를 대표하는 메뉴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그의 '붉은 마법'은 전 세계 주방에서 각국의 식재료와 만나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한국 치킨 산업의 한 시대는 그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렸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남아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갈 것이다. 故 윤종계 창업주는 진정으로 '한국의 할랜드 샌더스'였으며, 맛으로 세상을 이롭게 한 위대한 셰프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Cook&Chef / 제조리 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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