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우의 식(食)더스트리] “올릴 땐 신속히, 내릴 땐 찔끔”… 6년간 밀가루값 담합한 7개 제분사에 과징금 6,710억 원대
신현우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5-21 16:48:36
이미지 생성: ChatGPT (OpenAI) 제공 / Cook&Chef 제작
[Cook&Chef = 신현우 전문기자] 국내 B2B 밀가루 판매시장의 90%에 육박하는 제분사 7곳이 약 6년에 걸쳐 밀가루 공급가격과 물량을 담합해 온 사실이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주병기) 조사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2026년 5월 20일 대한제분·CJ제일제당·사조동아원·삼양사·대선제분·삼화제분·한탑 등 7개 제분사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총 6,710억 4,5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담합 사건 과징금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밀가루는 라면·국수·빵·과자를 만드는 제면·제과·제빵업체뿐 아니라 칼국수집·만두집·분식점·중식당·베이커리, 급식업체까지 외식·식품 현장 거의 모든 곳이 매일 쓰는 핵심 원재료다. 이번 담합이 단순한 ‘대기업 간 가격 담합’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6년·24차례·55회 회합… 과점이 만든 ‘경쟁 없는 시장’이번 담합 행위는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이어졌다. 7개사는 이 기간 농심·팔도·풀무원 등 대형 수요처를 상대로 한 공급가격·물량 담합 19차례, 중소형 수요처와 대리점 등 전 거래처를 상대로 한 공급가격 담합 5차례 등 모두 24차례에 걸쳐 합의하고 이를 실행했다.
이들이 시장을 주무를 수 있었던 배경은 압도적인 과점 구조다. 2024년 매출액 기준 7개사의 국내 B2B 밀가루 시장점유율은 87.7%에 달한다. 특히 대한제분·CJ제일제당·사조동아원 등 상위 3개사, 이른바 ‘빅3’가 62.0%를 차지한다. 담합에 가담하지 않은 나머지 2개사인 에스피씨삼립·삼양제분의 점유율은 12.3%였지만, 이들은 대부분 계열사에 밀가루를 공급하는 곳이다. 사실상 외부 판매시장은 이번 담합 7개사가 장악하고 있었던 셈이다.
합의는 조직적이었다. 7개사는 담합 기간 중 총 55회에 걸쳐 회합을 가졌다. 영업본부장 이상 대표자급이 큰 틀을 잡으면, 영업팀장 등 실무자급이 세부 내용을 확정하는 방식이었다. 상황에 따라 상위 3개사, 상위 3개사와 삼양사를 포함한 4개사, 7개사 회합 등 형태도 다양했다. 회합에 빠진 하위사에는 유선으로 합의 내용을 전달하거나 하위사가 먼저 상위사에 연락해 “내용을 알려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담합의 출발점은 최대 수요처… 기준가격을 흔들면 시장 전체가 흔들린다이번 사건을 외식·식품 종사자가 주목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담합의 ‘기준점’이 국내 최대 밀가루 수요처였다는 데 있다. 농심은 국내 밀가루 총 가공량의 약 10%를 사들이는 최대 수요처다. 제분사들이 농심에 공급하는 가격은 다른 거래처 공급가격의 기준가격, 즉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 최대 수요처에 매기는 가격이 시장 전체 밀가루 단가의 기준선이 되는 구조다.
발단은 2018년 11월이었다. 대한제분이 점유율 확대를 노리고 농심 견적에서 가장 낮은 금액을 써내 2019년 공급 물량의 약 30%를 확보했다. 물량을 뺏긴 사조동아원은 중소형 대리점을 상대로 파격 할인 공세에 나섰고, 2019년 들어 제분사 간 경쟁은 격화됐다. 그러자 2019년 11월경 상위 3개사 대표자급 임원과 삼양사 관계자가 식당에 모여 “서로 과도한 경쟁을 자제하고, 적정 가격을 유지하면서, 안정적 물량을 확보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것이 담합의 시작이었다.
외식·급식 업장도 예외 없었다… ‘전 거래처’ 정조준밀가루 유통은 사업자 대상 거래인 B2B와 소비자 대상 거래인 B2C로 나뉜다. 제분사 매출의 대부분은 B2B에서 나온다. B2B 거래는 다시 제빵·제과·제면업체 같은 대형 실수요처와, 소형마트·온라인·중소형 실수요처·외식업체·급식업체 등에 밀가루를 재판매하는 대리점 거래로 구분된다. 다시 말해 외식업체와 급식업체는 주로 대리점을 통해 밀가루를 공급받는 중소형 수요처에 해당한다.
문제는 담합이 대형 수요처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20년 1월 하위사인 삼화제분·대선제분·한탑까지 가세하면서 담합 대상은 전 거래처로 확대됐다. 이때 합의된 가격은 혼합분 1포 20kg당 1만 원, 중력 2급분 1포당 7,500원 이상이었다. 2021년 4월부터는 7개사 전부가 전 거래처를 상대로 밀가루 전 제품 가격을 1포당 1,000원 ~ 1,500원 인상 합의·실행하기에 이른다.
특히 외식·제면 현장에서 많이 쓰는 품목이 직접 영향을 받았다. 국내 밀가루 생산의 약 74%를 차지하는 중력분은 적당한 찰기가 필요한 라면·국수·만두·칼국수 등 제면용으로 흔히 쓰이는 다목적분이다. 담합 합의 테이블에 자주 오른 품목도 이 중력분과 혼합분이었다. 가격 결정권을 쥔 제분사들이 단가를 맞춰 올리면, 협상력이 약한 동네 식당·분식점·급식업체는 인상분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올릴 땐 빠르게, 내릴 땐 천천히… 원가의 비대칭 전가외식 사업자라면 한 번쯤 의심했을 “왜 원료값이 떨어져도 밀가루값은 그대로일까”라는 물음에 이번 조사는 답을 내놨다. 우리나라는 밀가루 원재료인 원맥의 99%를 미국·호주·캐나다 등에서 수입한다. 밀가루 가격은 국제 원맥 시세와 환율에 크게 좌우된다. 제분사들은 이 변동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했다.
2020~2022년 원맥 시세 상승기에는 원가 상승분을 최대한 빠르게, 큰 폭으로 판매가격에 반영하기 위해 전 거래처 대상 인상 폭과 시기를 합의했다. 반대로 2023년 이후 원맥 시세 하락기에는 원가 하락분을 최대한 늦게, 적은 폭으로 반영하기 위해 농심 등 대형 수요처 대상 인하 폭과 시기를 합의했다.
실제로2023년 5 ~6월경 농심이 “원맥 시세가 안정됐으니 1kg당 80원 내려달라”고 요청하자, 제분사들은 모여 최소 인하폭을 20원으로 정했다. 2024년 12월에는 농심이 가격 인하를 요청했는데도 환율 상승을 이유로 오히려 가격 인상을 합의했다.
그 결과 담합 기간 중인 2022년 9월경 밀가루 판매가격은 담합 시작 시점인 2019년 12월 대비 제분사별로 최소 38%에서 최대 74%까지 뛰었다. 원가 상승기에는 가격이 신속히 올랐지만, 하락기에는 더디게 내려간 구조가 확인된 것이다. 담합에 가담한 상위 3사와 하위 3사 모두 담합 이전보다 영업이익률이 크게 개선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매일 밀가루를 쓰는 외식·식품 사업자의 원가 부담이 제분사의 수익 개선으로 이어진 셈이다.
“공정위 문제 돼”… 위법 알면서도 진행한 정황이번 사건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제분사들이 자신들의 행위가 위법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대목이다. 공정위가 확보한 통화·메신저 기록에는 그 정황이 담겼다.
2020년 1월 사조동아원 내부 회의에서는 “공정위 문제 돼”, “그러니까 시기하고 폭하고 다 조정해야 돼”라는 발언이 오갔다. 같은 해 다른 통화에서는 “다 같이 하되 담합했다는 얘기가 나올 거다”, “그 담합했다는 부분들을 어떻게 타파할 거냐 전략도 잘 짜야 한다”는 대화도 포착됐다. 동시 인상이 적발 위험을 키운다는 점을 알고 대한제분은 2월 1일, CJ는 2월 7일, 사조동아원은 2월 15일 식으로 인상 시기를 분산시킨 정황도 확인됐다.
하위 3사인 삼화제분·대선제분·한탑은 상위사가 먼저 가격을 올려주면 이에 편승해 수익을 높였다. 한 통화에서 상위사 임원은 하위사를 두고 “공짜로 받아먹는다”고 표현했고, 하위사 임원은 “비슷한 가격 폭으로 인상하면 출혈경쟁 없이 적정가격을 유지하고 물량도 안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다”고 진술했다. “농심 올렸으니까 어떻게서든 다 올려버려야 한다”는 발언은 이 카르텔이 어떻게 시장 전체로 번졌는지를 보여준다.
공정위는 이번 행정 제재에 앞서 2026년 1월 검찰의 고발요청에 따라 이 사건 7개 제분사와 담합에 가담한 임직원 총 14명에 대해 이미 고발 조치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행정 제재와 별도로 형사절차로 넘긴 조치다.
재범에 보조금까지… 역대 최대 과징금 부른 배경공정위가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매긴 데는 두 가지 사유가 작용했다.
첫째, 이들 7개사는 이미 2006년에도 밀가루 담합으로 시정명령과 함께 총 435억 4,700만 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다. 한 차례 제재를 받고도 다시 담합을 단행한 재범인 셈이다.
둘째,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2022년 6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이들에게 총 471억 원의 가격안정 지원사업 보조금을 지급했음에도 제분사들은 담합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보조금 수령 시점 이전에 가격 인상 합의를 실행하는 방안을 논의한 정황도 드러났다. 국민 세금으로 마련한 보조금을 받으면서 뒤로는 가격을 짜고 올린 것이다.
과징금은 사조동아원 1,830억 9,700만 원, 대한제분 1,792억 7,300만 원, CJ제일제당 1,317억 100만 원, 삼양사 947억 8,700만 원, 대선제분 384억 4,800만 원, 한탑 242억 9,100만 원, 삼화제분 194억 4,800만 원 순으로 부과됐다. 적용 법조는 공정거래법 제40조 제1항 제1호 가격담합과 제3호 물량담합이다.
향후 밀가루값은… ‘가격재결정 명령’이 변수외식·식품 사업자가 가장 궁금해할 대목은 앞으로 밀가루값이 어떻게 되느냐다. 공정위는 이번에 법 위반행위 금지명령을 비롯해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 가격 변경내역 보고명령, 법 위반사실 통지명령, 임직원 교육, 담합 여부 자체조사·보고, 담합 가담자 징계규정 신설 등 총 7개 시정명령을 부과했다.
이 가운데 핵심은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이다. 각 제분사가 담합 이전의 경쟁 질서를 회복하는 수준으로 밀가루 가격을 다시 결정하고, 그 근거와 결과를 보고하도록 한 조치다. 또 향후 3년간 밀가루 가격 변경 현황을 연 2회 공정위에 서면 보고해야 한다.
담합으로 왜곡됐던 시장가격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면, 그동안 부풀려진 단가를 부담해 온 외식·급식 현장의 원가 부담도 일정 부분 완화될 여지가 있다. 공정위는 밀가루처럼 국민 생활과 밀접한 식료품 가격 담합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법 위반이 확인되면 엄중히 제재하겠다는 방침이다. 매일 밀가루를 다루는 외식·식품 현장으로서는 이번 조치 이후 공급 단가가 실제로 정상화되는지를 거래 제분사·대리점과의 협상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외식업계와 제과·제빵업계에서는 밀가루가 빵·국수·만두·분식류 등 주요 메뉴의 핵심 원재료인 만큼, 이번 담합이 장기간 누적된 원가 부담으로 이어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원재료 협상력이 낮은 영세 외식업체와 소규모 베이커리일수록 인상된 공급 단가를 그대로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는 지적이다.
다만 빵값과 면류 가격 등 소비자 판매가격에는 밀가루 외에도 인건비·임차료·전기료·물류비 등 여러 비용 요인이 함께 반영된다. 따라서 이번 담합을 특정 제품 가격 상승의 단일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외식·제과 현장의 원가 압박을 키운 주요 요인 중 하나였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Cook&Chef / 신현우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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