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유산균 ‘발효 우점’의 비밀 밝혀졌다… 세계김치연구소, 과학적 기전 첫 규명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 2025-06-17 12:59:58
[Cook&Chef 이경엽 기자] 김치의 맛과 품질을 좌우하는 핵심은 유산균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수많은 발효균 중 어떤 균이 어떻게 우점(우세 점유)하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이에 대해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과학적 메커니즘을 규명해 주목받고 있다.
세계김치연구소(소장 장해춘)는 자체 개발한 김치종균 3종(WiKim32, WiKim33, WiKim0121)이 김치 발효 환경에서 경쟁 균주를 제치고 ‘우점균’으로 자리잡는 생물학적 기전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고 16일 밝혔다. 이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인 세계김치연구소가 주도했다.
발효 생태계 선점, 유전체-대사체 기반 실증
이번 연구는 김치 발효 초기 단계에서 유익한 유산균이 다른 균보다 먼저 자리 잡고 우점균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멀티오믹스(Multi-omics) 기반의 통합 분석을 통해 실증한 것이 핵심이다. 멀티오믹스는 유전체(Genome), 전사체(Transcriptome), 대사체(Metabolome) 등 다양한 생명정보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분석하는 최신 생명과학 기술이다.
그 결과, WiKim 종균들은 포도당과 과당 외에도 라피노스, 갈락토스, 락토스 등 다양한 탄수화물을 빠르게 대사할 수 있는 유전적 특성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종균은 발효 초기 단계에서 에너지원(ATP)을 신속하게 생성해 생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며 발효 미생물 생태계를 주도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김치의 낮은 온도와 산성도라는 스트레스 환경에서도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통해 뛰어난 생존력과 군집 형성 능력을 발휘한다는 점도 확인됐다. 이는 일정한 발효 품질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균일성과 안전성 확보의 열쇠로 평가된다.
과학적 기준 제시… 김치산업 경쟁력 높인다
세계김치연구소는 이번 연구 성과가 단순한 미생물 기능 검증을 넘어, 차세대 김치 종균의 선발과 평가에 있어 정량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발효식품 산업에서는 지금까지 ‘전통 장인의 노하우’ 또는 ‘감각적 평가’에 의존해왔던 유산균 선발 기준을 과학적으로 확립한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재 WiKim0121 종균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 ‘김치종균 보급사업’을 통해 이미 전국 94개 김치제조업체에 누적 28.8톤이 공급됐으며, 국내 유통은 물론 수출용 김치 생산에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연구 성과를 넘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실용성과 확장 가능성을 증명한 사례로 평가된다.
세계화 기반 닦는 과학기술… 국제 학술지에도 성과 발표
이번 연구는 세계적 권위를 가진 과학저널 ‘npj Science of Food’(네이처 자매지, 영향력지수 IF 6.3) 2025년 4월호에 정식 게재됐다. 연구에 활용된 김치종균 3종의 유전적 특성과 기능성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는 세계김치연구소가 운영하는 ‘김치자원은행’ 공식 홈페이지(www.wikim.re.kr/bkri)를 통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세계김치연구소 첨단융합연구본부 박해웅 본부장은 “이번 연구는 발효 우점 유전자의 조기 선별을 가능하게 하는 과학적 기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이라며 “앞으로도 김치 발효의 원리를 지속적으로 구명해 나가며, 국내 김치산업의 고도화와 글로벌 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성과는 과학 기반 발효기술을 통해 ‘김치의 세계화’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식품·발효산업 관계자는 물론, 전통식문화의 글로벌 전략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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