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흑조·자광도가 깨어났다… 한식갤러리 이음에 펼쳐진 '잊힌 1,400종'의 귀환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 2026-04-14 10:30:34

농식품부·한식진흥원, 6월 7일까지 '토종쌀로(路)' 특별기획전
우보농장 이근이 농부의 15년 복원 결실...기후위기 대응 식재료로 토종쌀 가능성 재조명
사진 = 한식진흥원

[Cook&Chef = 이경엽 기자] 획일화. 현재 한국인의 밥상을 규정하는 단어다. 매일 마주하는 흰 쌀밥 이면에는 단조로움이 존재한다. 신동진, 추청, 오대쌀 등 소수 개량 품종이 전국 논의 90% 이상을 점유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지난 반세기 동안 추구해 온 '생산 효율성'의 결과인 동시에, 수천 년간 이어진 식문화의 다양성을 상실한 기록이다. 단일 품종에 대한 극단적 의존은 기후 변화와 신종 병충해 앞에서 식량 안보 전체를 위협하는 구조적 위험이다.

이러한 위협 앞에서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송미령)와 한식진흥원(이사장 이규민)이 '토종벼'라는 화두를 제시했다. 지난 4월 7일부터 6월 7일까지 서울 종로구 한식문화공간 이음 한식갤러리에서 열리는 기획특별전 '토종쌀로(路)'는 과거 회상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획일화된 농업 시스템에 대한 정책적 반성이자 K-푸드의 미래 자산을 확보하려는 시도다. 본 기사는 이 전시를 문화 행사를 넘어, 토종벼가 외식 산업과 소비자, 국가 식량 정책에 미칠 다층적 영향을 심층 분석한다. 이는 잊힌 유산의 복원을 넘어 지속 가능한 식문화 구축이라는 거시적 담론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근대화의 그늘, 사라진 토종벼

토종벼는 단순히 '옛날 벼'를 의미하지 않는다. 수백, 수천 년에 걸쳐 한반도의 각기 다른 기후와 풍토에 적응하며 살아남은 재래종 벼의 총칭이다. 농부의 손을 통해 대대손손 선발, 육종된 살아있는 유전자원의 보고다. 적토미(赤土米), 북흑조, 자광도 등 이름만큼이나 다채로운 맛과 향, 색, 질감을 지녔다. 이는 지역의 정체성이자, 각기 다른 음식과 조화를 이루던 우리 식문화의 원형이었다.

그러나 이 유산은 1970년대 '녹색혁명'이라는 과제 앞에서 급격히 사라졌다. 당시 정부의 강력한 정책 아래 식량 증산은 최우선 과제였다. 그 선봉에 선 것이 바로 '통일벼'다. 기존 재래종을 크게 웃도는 다수확 품종이었다. 정부는 통일벼 재배를 강력히 장려했고, 전국의 논은 빠르게 통일벼로 뒤덮였다. '생산성'과 '효율성'이라는 기준 아래, 수많은 토종벼는 '비효율적 유물'로 취급되며 논에서 사라졌다.

그 결과, 100여 년 전 약 1,450여 종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진 한반도 재래종 벼는 1980년대를 거치며 농가 재배 현장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현재 국립농업유전자원센터에 약 4,000여 종의 토종 볍씨가 냉동 보존돼 있긴 하지만, 이는 '박제된 보존'에 가깝다.

식량 자급률은 높아졌지만, 살아 움직이는 쌀의 유전적 다양성은 거의 상실됐다. 이는 종자 주권의 약화로 이어졌다. 특정 품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해당 품종에 치명적 질병이 발생하거나 기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 쌀 생산 시스템 전체가 붕괴될 수 있는 취약성을 내포하게 됐다.

민간의 노력, 공공의 영역으로... 정책 전환의 신호탄

한식진흥원의 '토종쌀로' 전시는 이러한 상실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한다. 그 중심에는 '우보농장'의 이근이 농부가 있다. 그는 2010년 우보농장을 설립한 이래 약 15년에 걸쳐 전국을 돌며 사라져가는 토종벼 씨앗을 수집하고 증식해왔다. 그의 노력으로 현재 우보농장은 약 450여 품종의 토종벼를 복원·관리하고 있으며, 이 중 150여 종이 실제 '쌀'의 형태로 우리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는 단순 농업 활동을 넘어, 국가가 놓친 생물 유전자원을 개인이 보존한 문화유산 보존 활동의 성격을 띤다.

이번 전시는 이근이 농부가 보존한 토종벼와 토종쌀, 볏단 등 실물 자료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관람객은 박제된 유물이 아닌, 북흑조, 자광도, 적토미 등 살아있는 실물을 직접 확인한다. 쌀알의 모양과 색, 볏대의 키와 굵기를 통해 생물학적 다양성을 직관적으로 체감한다.

주목할 지점은 국가기관인 한식진흥원이 민간 농가인 우보농장과 협력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중요한 정책적 패러다임 전환을 시사한다. 과거 정부 주도 종자 보존 사업이 연구소의 유전자원 '냉장 보관'에 치중했다면, 이번 협업은 현장에서 씨앗을 '재배'하며 가치를 실증해 온 민간의 자산을 공공 영역으로 편입한 첫걸음이다.

이는 토종 자원의 보존과 활용이 더 이상 소수의 노력이 아닌,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공 과제임을 인정한 상징적 장면이다. 현장의 자산과 기관의 정책적 의지가 결합해 토종쌀의 가치를 대중과 산업계로 확산하는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의 보험, 토종벼의 전략적 가치

전시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토종벼를 '미래 식량자원'으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현재 주력 재배 품종들은 최적의 환경에서 최대 수확량을 내도록 육종된 '엘리트' 품종이다. 이는 예측 불가능한 가뭄, 폭우, 폭염 등 기후 변화의 극단성 앞에서는 취약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 토종벼는 수천 년간의 자연선택과 인공선택을 거친 '생존 전문가' 집합체다. 각기 다른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유전적 다양성을 품고 있다. 산간 지역의 '산도(山稻)' 계열 벼들은 내건성(耐乾性) 형질을, 해안가 품종은 내염성(耐鹽性) 형질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가 크고 까락이 발달했으며 자기 지역성이 뚜렷하다는 것이 토종벼의 공통된 특징이다.

이 유전적 다양성은 미래 식량 안보를 위한 '유전자 라이브러리'이자 일종의 보험이다. 지금은 수확량이 적어 경제성이 낮아 보일지라도, 미래의 기후 재앙이나 신종 질병 상황에서 이 유전자들은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한식진흥원은 이번 전시를 통해 토종벼가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식재료가 아니라,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할 수 있는 중요한 국가 전략 자산임을 역설한다. 이는 단기적 수익성을 넘어 장기적 관점의 지속 가능성을 제시하는 중요한 통찰이다.

이미지 생성: ChatGPT (OpenAI) 제공 / Cook&Chef 제작

맛과 스토리, 외식 산업의 새로운 기회

토종쌀의 가치는 생태적, 전략적 측면에만 머물지 않는다. 외식 산업의 관점에서 토종쌀은 '차별화'와 '고부가가치화'를 위한 강력한 무기다. 모든 식당이 동일한 품종의 쌀을 사용하는 현실에서, 품종마다 다른 특성을 가진 토종쌀은 셰프에게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 된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의 활용 사례도 이미 축적되고 있다. 우보농장의 토종쌀은 품종별 특성에 맞춘 가공품 개발로 이어져 왔다. 자광도는 초콜릿으로, 궐나도는 아이스크림 젤라또로, 대관도는 시루떡으로 가공되며 고부가가치 식재료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해왔다.

특히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 방한 시 청와대 만찬에서는 평안남도 북흑조, 함경북도 흑갱, 김포 자광도, 충북 흑미를 혼합한 밥이 독도새우와 함께 상에 올라 토종쌀의 외교적 상징성까지 입증한 바 있다. 이근이 농부의 토종쌀은 신세계·현대백화점에서 1kg당 1만5천 원 선에 유통되고 있어 일반 쌀 대비 부가가치가 현저히 높다.

더 중요한 것은 토종쌀이 가진 '스토리'의 힘이다. 셰프는 손님에게 품종의 이름과 그 쌀이 자라온 땅, 그것을 지켜온 농부의 이야기를 함께 전할 수 있다. 이 순간 음식은 생산자의 철학과 땅의 역사를 담은 하나의 '작품'이 된다. 이는 외식업체에게 새로운 수익 모델을 제시한다. 토종쌀 메뉴는 객단가를 높이는 동시에 레스토랑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브랜딩 수단이 된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활용 가능성을 다채롭게 제시하며, 셰프와 외식업 관계자에게 새로운 메뉴 개발의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위한 정책 과제

한식진흥원의 기획전은 토종쌀의 가치를 알리는 것을 넘어, 관련 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정책적 신호탄으로 해석해야 한다. 대중적 관심과 외식업계의 수요가 확인될 때, 안정적인 생산·유통 시스템 구축 논의가 힘을 얻을 수 있다.

물론 과제는 명확하다. 첫째, 생산의 문제다. 토종벼는 대부분 키가 크고 수확량이 적어 생산 단가가 높다. 정부는 단순 보조금을 넘어, 친환경 재배 기술 지원, 품종별 재배 매뉴얼 개발 등 실질적 생산성 향상 방안을 지원해야 한다.

둘째, 유통의 문제다. 다품종 소량생산 특성은 기존 유통 시스템과 맞지 않는다. 농부와 셰프를 직접 연결하는 플랫폼 구축이나, 지역 단위의 공동 도정·가공 시설 지원 등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

셋째, 연구 및 데이터베이스 구축이다. 수백 종에 달하는 토종벼 각각의 영양학적 특성, 조리 적합성 등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부족하다. 정부와 연구기관은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산업계가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토종쌀로' 전시는 한식의 미래를 향한 중요한 제언이다. 토종쌀은 기후 위기 시대에 식량 주권을 지킬 전략적 자산이자, K-푸드의 스펙트럼을 확장할 핵심 콘텐츠다. 이 작은 볍씨의 가치를 어떻게 현실의 식탁 위로 구현할 것인가. 이제 산업계와 정책 당국이 함께 답해야 할 때다.

Cook&Chef / 이경엽 기자 cooknchefnews@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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