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f Column / 음식평론가 최수근 조리박물관장, 셰프의 꿈> 직장에서 힘들 때는 동호회 활동이 필요하다

최수근

skchoi52@hanmail.net | 2021-05-04 08:14:26

-‘에스코피에 요리연구소(E.C.A)’를 만든 것

[Cook&Chef 최수근 칼럼니스트] 나는 존경하는 조리사가 많다. 40년을 조리사로 일하면서 많은 선후배들과 일한 경험이 있다. 일할 때는 서로가 서로를 존경한다는 말을 하지 않지만 그만둔 후에는 존경하는 선배님들이 있다. 꼭 한사람만 말하라면 조리사들이 모두 존경을 받는 프랑스의 셰프 에스코피에가 나의 멘토이다. 84년, 니스에 있는 개인 박물관을 보고 나는 이 사람처럼 평생을 살겠다고 맹세했다.

그 후, 나도 귀국하면 이런 박물관을 만들고 조리사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에스코피에가 쓴 소스 관련 내용을 모아서 정리도 하고, 향후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많은 고민을 했다. 그때 결심한 게 박물관 기초 조리서적 편찬과 요리학교의 설립 요리평론가 양성을 위해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첫 번째 한 것이 이분의 이름을 따서 ‘에스코피에 요리연구소(E.C.A)’를 만든 것이다. 2년 동안, 연구생 조우현(조리명장), 고승정(한조고 교사), 김용수(프라자호텔 조리부장) 세 명과 함께 한마음으로 모여서 요리에 대한 많은 생각을 나눴다. 그때가 1990년이었다. 2년간 공부시키고, 졸업 전시회를 끝으로 졸업을 시켰다.

일반 친목회와는 달리 우리는 모여서 진지하게 토의하고 유명 셰프의 특강과 선배들의 요리특강을 들으면서 각자 자신의 능력을 키워가는 모임을 가졌다. 지금은 많은 조리학도들이 성장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는 걸 보면 자랑스럽다.


이 연구단체를 만든 것은 이유가 있다. 1983년에 프랑스 르 꼬르동 블루로 유학을 다녀와서 호텔신라에서 근무를 하던 중, 어느 날 나 자신에게 질문했다.

 “너는 지금 어떤 목적으로 일하고 있느냐, 너는 무엇을 위해서 일하고 있느냐, 너는 지금 어떤 생각으로 요리를 하고 있느냐.”


생각해보니 ‘내가 이러면 안 된다, 처음에 유학 갈 때는 한국의 조리발전을 위해 열심히 요리 공부해보자, 우리나라가 아닌 프랑스에 가서 한번 도전해보자.’ 이래서 갔다 왔는데 와보니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에드워드 권이 자서전에 기술한 걸 보았는데, 선배님들의 질책과 시기 때문에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성공했다는 글을 보았다. 필자 역시 그와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나는 가정이 있고 우리나라의 현실을 그대로 인정해 주면서 노력해보자 생각해서 만든 것이 ‘A.C.F’라는 프랑스 요리 연구회였다. 내가 공부한 것을 회사에서 펼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이 모임을 만들었다. 지금은 그 당시 선배님들의 의견을 절대로 오해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동안 고생하면서 이루어 놓은 업적에 누가 될까 봐 그분들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당시의 조직문화, 우리나라 조리업계의 위치 등을 이해하면 그때의 나의 편견과 오해 등으로 겪었던 일들 때문에 나는 정말 남모르게 많이 울기도 하고 동료 몇 사람과 같이 술 먹으면서 신세 한탄을 한 적도 많다.


그 당시 나는 내가 왜 전문대를 나와 해외유학을 갔다 와서, 왜 가방끈이 길어서 이런 고생을 할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어떤 동료는 고등학교만 나왔어도 실력도 나보다 나은 것 같고, 주변에 지인도 많아서 성공하는데, 나는 왜 이런지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연구회를 만들어 요리 수준을 높여보자고 200여 명이 모여 활동했었다.

지금부터 20여 년 전의 일이라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 당시 의욕이 있던 셰프들은 모두 모였던 것 같다. 이병우, 최원기, 이상정, 신충진, 나영선, 정동희, 양진곤 등, 우리는 모이면 사심 없이 밤을 새면서 의논도 하고 고심도 했다. 그때만큼 멋있게 연구모임을 해본 기억이 그 후에는 없었다.


그러다가 몇 년 후에 셰프 13명이 유럽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돌아온 후 이 모임이 약해지고, 다시 만든 모임이 ‘에스코피에 요리연구소’다. 이 연구소 특징은 몇 가지 있다. 구성원의 자격은 결혼을 안해야 하고, 남자여야 하고, 직장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한 기수 당 3명만 입학시켜서 교육을 시켰다.


처음에는 염창동 아파트에서 매달 두 번씩 모여 혼자서 요리교육을 한 것 같다. 그 당시 내 일을 도와준 홍갑진, 신충진 씨 등에 고마움을 전한다. 여기 출신 중의 한 명인 조우현 오너셰프가 내가 본인의 멘토라고 하여서 방송국에서 인터뷰한 기억이 있다. 솔직히 호텔에서 23년, 학교에서 20년 정도 교수로 있었지만 나를 멘토라고 만인 앞에서 밝힌 것은 처음이어서 기쁨과 미안함이 함께 어우러졌다.


내가 그에게 멘토가 될 만한 자격이 있나 생각해보았다. 그동안 많은 후배들이 나에게 당신은 나의 롤 모델이라는 사람은 많았지만 나를 멘토라고 하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나는 이제 학교를 떠나 그동안 꿈꿔왔던 조리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제 조리박물관 옆에 요리연구소를 만들어 대한민국에서 나에게 조언을 듣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좋은 조언자가 되기를 꿈 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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