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 한식을 가져가지 않는다, 대신 장과 풍미를 가져간다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4-02 23:52:20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글로벌 식품기업 Kerry가 2026년 발표한 Taste Charts는 단순한 트렌드 보고서의 성격을 넘어선다. 1,200여 명의 과학자와 100명의 향미 전문가, 그리고 수천 건의 제품 출시 데이터와 소비자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구성된 이 자료는, 앞으로 어떤 맛이 시장에서 확장될 것인가를 구조적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풍미 지도’에 가깝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특정 국가의 요리가 완성된 형태로 제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신 각 문화권의 맛은 분해되고 재구성되어, 글로벌 식품 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요소’로 등장한다.
이 지점에서 한식은 흥미로운 방식으로 나타난다. ‘Korean cuisine’이라는 이름은 거의 보이지 않지만, 그 안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곳곳에서 동시에 등장한다. 청양고추, Korean smoked galbi, gochujang butter, creamy doenjang, kimchi, jjamppong. 이들은 하나의 메뉴로 묶이지 않고 육류, 소스, 수프 등 서로 다른 카테고리 안에서 각각 부상한다. 이는 글로벌 시장이 한식을 하나의 완성된 요리 체계로 받아들이기보다, ‘맛을 구성하는 시스템’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Meat & Meals’ 카테고리에서 나타나는 청양고추, 갈비, 고추장, 된장의 동시 등장은 중요한 신호다. 이는 단순히 한국 음식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매운맛, 지방, 발효, 단맛이 결합된 하나의 구조, 즉 ‘Korean flavour system’이 글로벌 식문화 안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뜻이다. 청양고추는 날카로운 자극과 즉각적인 열감을 제공하고, 갈비는 지방과 단백질에서 오는 깊은 포만감을 만든다. 고추장은 발효에서 비롯된 감칠맛과 단맛을 동시에 담당하며, 된장은 그 깊이를 더욱 확장한다. 각각은 독립적인 재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구조로 작동한다.
이 구조를 완성하는 마지막 요소로 Kerry는 ‘Korean honey’를 제시한다. 여기서 말하는 Korean honey는 특정 원재료가 아니다. 이는 꿀, 조청, 물엿과 같은 당류에 간장이나 장류, 마늘, 향신 요소가 결합된 ‘한국식 단맛 구조’를 의미한다. 단맛이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감칠맛과 발효, 그리고 때로는 매운맛과 함께 작동하는 형태다. 이는 최근 글로벌 식문화에서 나타나는 변화와 정확히 맞물린다. 단순한 당도를 넘어, sweet와 savory, heat가 동시에 작용하는 복합적인 단맛, 즉 ‘complex sweetness’로의 이동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미각의 변화라기보다 식문화 전반의 구조적 전환과 연결된다. 최근 GLP-1 계열 약물의 확산은 식습관 자체를 바꾸고 있다. 섭취량이 줄어들면서 소비자는 더 적은 양으로도 충분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음식을 찾게 된다. 이는 곧 ‘양’에서 ‘밀도’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Kerry 역시 이 흐름을 “한 칼로리 한 칼로리의 가치가 중요해지는 시대”로 설명한다. 즉 더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더 효율적으로 먹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
이때 발효는 단순한 전통이 아니라 기능으로 작동한다. 발효는 식욕을 억제하는 기술이 아니다. 대신 음식의풍미를 증폭시키고, 적은 양으로도 충분한 만족을 제공하는 ‘밀도 설계 방식’이다. 장류에서 생성되는 우마미와 코쿠미는 음식의 깊이를 확장시키며, 이는 곧 식사의 효율로 이어진다. 고추장이나 된장이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라, 음식 전체의 중심 축으로 작동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간장(2위)과 김치(10위)는 이미 글로벌 기본 풍미로 자리 잡았고, 짬뽕(5위)은 복합 국물 풍미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식품 산업이 한식을 ‘그대로’ 가져가지 않는 이유도 이 지점에서 설명된다. 완성된 요리는 문화적 맥락과 조리 과정, 식사 방식까지 포함해야 하지만, 풍미 구조는 기술로 전환될 수 있다. 청양고추는 매운맛의 정교한 형태로, 고추장은 발효 기반 소스로, 갈비는 단백질과 지방의 풍미 모델로 각각 분해되어 다양한 제품에 적용된다. 이들은 레스토랑이 아니라 공장에서 재구성되며, 소스, 드레싱, 스낵, 냉동식품의 형태로 확장된다.
결국 지금의 흐름은 한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의미보다, 한식이 가진 구조가 글로벌 식문화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고추장, 갈비, 청양고추, 그리고 Korean honey로 이어지는 이 흐름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식문화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왜 지금 한식인가. 그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한식은 처음부터 완성된 구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운맛, 단맛, 감칠맛, 발효, 지방, 그리고 다양한 반찬으로 이루어진 식사 방식은 이미 ‘다양성’과 ‘균형’, ‘밀도’를 동시에 구현하고 있었다. 다만 그 구조가 지금까지는 문화 안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다.
이제 그 구조는 더 이상 한국 안에 머물지 않는다. 글로벌 식품 산업은 한식을 요리로 가져가지 않는다. 대신 그 안에 있는 시스템을 가져간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한식은 하나의 메뉴가 아니라, 하나의 설계 방식이다.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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