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묵도예’ 김상곤 작가 / 어떤 음식도 돋보이게 만드는 블랙의 마법사

임요희

cooknchefnews@naver.com | 2022-11-22 07:04:36

- 무주 한풍루로 ‘전통공예 테마파크’ 공예의 산실로 거듭나
- 어렵게 배운 도자기 기술, 아낌없이 공개
- 한국의 블랙 그릇,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 잡다

[Cook&Chef=임요희 기자] 흙과 불의 마술 도자기. 부드러운 흙에 뜨거운 불길이 닿으면 단단하면서 아찔한 형태의 도자기가 탄생한다. 명망 있는 공예가들의 갤러리와 작업실이 자리 잡고 있는 전북 무주 ‘전통공예 테마파크’. 이곳에 블랙 그릇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김상곤 작가의 ‘진묵도예’가 있다. 그는 전통 가마를 고집하고 직접 유약을 개발해 쓰면서 불을 데이터화 하는 등 도예에 과학을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도제식으로 전수되는 도예가에서 스승 없이 스스로 성취  
단국대 도예과에 입학한 뒤 거친 방황의 세월을 겪었다. 휴학을 할 정도로 고민이 깊었는데 결국 그릇쟁이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학교에 복학하던 해인 1988년 ‘진묵도예’를 설립했다. 나만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기쁨이 있었지만 힘든 점도 많았다. 오롯 시행착오를 감내 해야 했다. 고생은 했지만 실패가 있었기에 새롭게 알게 된 게 많다. 대표적으로 가스 가마를 연구하면서 연료비를 30% 줄이는 방법을 알아내 관련 논문을 쓴 것이다. 내가 너무나 힘들었기에 다른 사람이라도 좀 쉽게 가길 바랐다. 금도금 찻잔의 경우 일본에서 30년 도전하여 실패한 것을 진묵도예에서 성공시켰다. 우리 그릇은 10년을 써도 금도금이 안 벗겨진다. 나는 뭐든 성공하면 그 방법을 세상에 공개한다. 나의 방법들이 잘 활용될 때 잠을 줄여가며 연구한 보람을 느낀다.

흙을 찾기 위해 전국을 다녀
전통 다완(찻사발)을 구울 때는 직접 흙을 캐다가 사용한다. 보통 하동과 합천에서 흙을 가져온다. 내가 흙에 공을 들이는 것은 다완 고유의 색깔과 질감을 살리기 위해서다. 흙이 좋아야 그릇이 가볍다. 그렇다고 흙만 좋아선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불과의 궁합이다. 같은 흙이라도 불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온다. 하도 불을 들여다보니 이제는 몇 도에서 어느 정도 불을 때면 어떤 도자기가 나올지 머릿속에 다 그려진다. 유약도 직접 만들어 쓴다. 최근에는 진묵도예가 자리 잡은 무주 지역의 호두를 태워 얻은 재로 유약을 만들어 쓰고 있다. 보통 한 가마에서 최고의 다완은 5개 정도 나온다.

블랙 그릇은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됐을까
블랙 그릇은 기와, 돌, 무쇠 느낌이 골고루 묻어 나는 검은 색 분청사기다. 한식, 양식, 중식, 일식 가리지 않고 매치가 잘되다 보니 해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 그릇을 만들게 된 계기는 소비자의 오더 때문이다. 어느 날 유명 한식당에서 그릇으로 기와를 썼는데 설거지할 때 쉽게 깨지더라며 기와 느낌은 살리면서 견고한 그릇을 만들 수 없냐고 문의가 왔다. 나는 다양한 방식으로 유약을 실험했는데 그릇에 유약을 분사했더니 돌출 면이 극대화되면서 거친 느낌이 잘 살아나게 되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기를 구운 후에는 그라인딩 작업을 추가했다. 이런 일련의 작업으로 인해 보기엔 거칠어도 만지면 부드럽고 매끄러운 감촉의 블랙 그릇이 탄생하게 되었다. 나만의 것을 얻기 위해 실험하고 또 실험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블랙 그릇이 영국, 캐나다, 미국 등지로 활발하게 수출되고 있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K-도자기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릴 생각이다.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한국산 생활자기의 우수성을 홍보할 계획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작가라는 타이틀보다는 공예가의 지위에 만족한다. 식탁의 주인공은 음식이다. 그릇은 음식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에 불과하다. 예술에 앞서 삶이다. 나는 그릇처럼 낮은 자리에서 평생 그릇쟁이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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