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 계절은 음식에만 담기지 않는다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3-31 18:59:43

문헌으로 본 한식 식기와 음식의 구조 [사진=위키백과 / 승정원일기]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한식은 계절을 반영하는 음식으로 자주 설명된다. 그러나 이러한 계절성은 음식의 재료나 조리 방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조선시대의 기록을 살펴보면, 음식과 함께 사용되는 기명 또한 일정한 구조 속에서 선택되고 운영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궁중과 반가라는 서로 다른 식문화 체계 안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궁중의 경우, 음식과 기명의 운영은 제도 안에서 관리되었다. 『경국대전』에는 사옹원이 왕실의 음식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관청으로 규정되어 있으며, 이는 왕실의 식사와 기명이 국가 관리 체계 안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실제 기록인 『승정원일기』에서는 수라상에 올라가는 음식과 함께 기명에 대한 언급이 확인되며, 이는 기명의 사용이 일정한 기준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또한 『원행을묘정리의궤』와 같은 의궤에서는 연회에 사용된 음식과 기명의 종류가 함께 기록되어 있으며, 유기, 백자기, 당화기 등 다양한 기물이 위계에 따라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확인되는 궁중 식기의 특징은 ‘규격화된 사용’이다. 기명의 형태와 재질은 음식의 종류뿐 아니라 의례의 성격과 위계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이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제도적 기준에 따른 운영이었다. 계절에 따라 음식의 구성은 변화했으나, 기명의 사용은 일정한 틀 안에서 유지되는 경향을 보인다.

반가의 식문화는 궁중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록에 남아 있다. 『음식디미방』, 『규합총서』, 『시의전서』와 같은 고조리서에서는 계절에 따른 음식 구성과 조리법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계절별로 나물, 장, 저장 음식, 면류 등의 비중이 달라지는 구조가 확인되며, 이는 식사가 계절의 흐름에 따라 구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서진=서진영기자 / 이조궁중요리통고 李朝宮中料理通攷 1957년 한희순·황혜성·이혜경 등이 궁중 음식에 관해 정리하여 발행한 조리서 재연 대하찜,유자화채, 유자단지 _궁중음식연구원]

이들 문헌에서는 기명에 대한 직접적인 서술은 제한적이지만, 음식의 성격을 통해 기명의 선택을 유추할 수 있는 구조가 나타난다. 수분이 많은 탕류나 국류는 깊은 기명에 담길 수밖에 없으며, 나물이나 구이류는 넓은 접시에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떡과 다식과 같은 음식은 형태를 유지하고 장식을 강조하기 위해 별도의 기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확인된다. 이는 음식의 물성과 형태에 따라 적절한 기명이 선택되는 구조가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궁중과 반가의 차이는 이러한 지점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궁중은 사옹원을 중심으로 기명과 음식이 제도적으로 관리되었으며, 의례와 위계에 따라 사용 기준이 정해졌다. 반면 반가는 계절과 생활의 흐름 속에서 음식이 구성되었고, 이에 따라 기명 역시 유동적으로 선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조선시대의 식문화는 음식과 기명이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 안에서 함께 작동하는 요소로 이해할 수 있다. 『경국대전』, 『승정원일기』, 『원행을묘정리의궤』와 같은 기록은 궁중 식기의 운영 방식을 보여주고, 『음식디미방』, 『규합총서』, 『시의전서』는 반가의 계절 음식 구조를 통해 기명의 사용 방식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문헌을 종합하면, 한식에서 계절은 음식에만 반영되는 요소가 아니라, 음식과 기명의 선택을 함께 규정하는 기준으로 작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한식이 단순한 조리의 집합이 아니라, 계절과 재료, 그리고 기명이 결합된 체계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라 할 수 있다.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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