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f Column / 최인 셰프의 스시(すし)이야기> 스시(すし)의 역사 와 일본으로의 전래

- 식초를 쳐서 신맛을 띄게 하는 하야스시와 자연발효에 의해 신맛을 띄는 핫고스시로 분류
- 핫고스시가 압도적으로 오래 되었으며 그 기원은 동남아시아에서 찾을 수 있어
최인 칼럼니스트 | chi33jj@naver.com | 입력 2021-09-20 10: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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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인 셰프의 대표 작품인 '대마리 스시'
[Cook&Chef 최인 칼럼니스트]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인이 좋아하는 스시(すし)는 웰빙음식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젊은 층까지도 즐겨 먹는 음식으로 자리매김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리인으로써 우리가 스시(すし)를 만들고, 먹고 하면서도 스시(すし)에 대한 깊이있는 지식은 갖고 있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을 늘 갖고 있었다.

오늘날 스시(すし)는 장기 보존식으로부터 패스트푸드로 180도 바뀌었다. 이토록 변모한 식품은 그 예가 흔치 않으므로 그 변천사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다. 그 변천사는 시대의 변화가 잘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바로 시대를 비춰주는 거울이라는 표현이 알맞다고 하겠다. 새로운 문화를 창출할 때 낡은 문화를 변화시킬 때 앞으로 우리 조리사는 시대의 흐름(트렌드)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는 점들을 고찰하기에 스시(すし)는 알맞은 테마가 될 것이다.
▲ 최인 셰프의 대표작인 '장미꽃 참치회'
스시(すし)의 역사
스시(すし)라는 요리는 식초를 쳐서 신만을 띄게 하는 하야스시와 식초를 쓰지 않고 자연발효에 의해 신맛을 띄는 핫고스시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형식으로는 핫고스시가 압도적으로 오래 되었으며 그 기원은 동남아시아에서 찾을 수 있다. 하야스시는 핫고스시를 일본에서 개량한 결과로서 스시(すし)가 일본 요리로 평가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스시(すし)문화의 선구적인 연구가 시노타는 스시(すし)의 기원을 동남아시아의 내륙인의 어류보존식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았다. (시노타의 ‘すしの 本’ 1966) 고지대이기 때문에 구하기 어려웠던 민물고기를 소금과 쌀밥으로 장기보존을 위해 채소절임처럼 발효시켜서 결과적으로 신맛을 띄게 된 식품이 스시(すし)의 기원 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인류학자인 이시게가 광범위한 Fieldwork를 통해 이러한 여러 종류의 식품이 동남아시아와 우리나라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시게에 의하면 이 같은 종류의 식품이 번창하게 된 것은 동남아시아의 저지대 벼 경작지대에서 경작밀도와 밀접하게 관련된 자급적인 어업이 행해지고 있다.

민물고기를 쌀 등 전분질 중에서 발효시키는 기술은 시노타가 주장하는 것과 같이 고지대보다는 농사를 짓는 벼의 경작과 더불어 성립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이시게는 동부 태국이나 미얀마 등지의 평야지대를 스시(すし)의 발상지 후보로 꼽고 있다. 이 지역은 우기와 건기가 뚜렷하여 우기에는 늪 상태가 되는 논에서 잡히는 민물고기를 건기까지 보존하기 위하여 풍부하게 수확되는 쌀 속에서 민물고기를 숙성 발효시켰다. 이것이 스시(すし)의 원형이라 생각된다. (이시게 ‘어간장과 나레즈시의 연구’ 1990) 현재까지 학계에서는 니노타 설보다는 이시게 설 쪽이 평판이 좋다.

스시鮨(젓갈지)와 스시鮓(젓갈자)
동남아시아의 발효식품이 북상하여 중국과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그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 식품에 관한 처음 문헌은 3세기에 편찬된 자전 ‘설문해자’에서 소금과 쌀로 만든 생선 절임을 스시(鮓)라고 표기하게 ;된 이유가 적혀 있다. 따라서 원형은 그 이전에 전해져 내려 왔으리라 생각된다.

같은 3세기경에 편찬 된 것으로 자전 ‘광아’에서는 스시(鮓)와 동의어로 스시(鮨)라는 글자를 사용했다. 그러나 기원전 5-3세기의 자전 ‘이아’에 의하면 鮨는 생선 젓갈이라고 적혀 있다. 젓갈에는 전분질(녹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에 이 스시(鮨)와 밥을 함께 사용하는 스시(鮓)는 같은 식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아’는 두문자를 혼용했다. 문자의 나라인 중국에서 그것도 자서를 엮은 학자가 이러한 잘못을 범했다는 것은 3세기경의 중국에서 얼마나 일반적이지 않은 식품이었나를 상상 할 수 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보면 스시(鮓)가 중국 기원의 식품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스시(鮨)와 스시(鮓)의 ‘광아’가 범한 혼용은 그 후에도 고쳐지지 않았으며 한국과 일본에 문자가 전해졌을 때에도 그 혼용은 계속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생선을 소금으로만 절인 젓갈과 생선에 소금, 조, 보리, 쌀 등 기타 곡물을 섞은 식해가 염연히 구분되어 사용되고 있다.

일본 헤이안시대 초기에 편찬한 ‘령의 해’ 883년에도 스시(鮨)는 스시(鮓)를 말함이다고 적고 있다. 중세 이후의 일본문헌에도 스시(鮨)나 스시(鮓)를 명확하게 구분하여 사용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예는 없으며 스시(鮨)를 젓갈의 의미로 사용한 예를 찾기 힘들다. 鮨와 鮓는 어느 경우나 스시를 나타내는 한자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것은 현재도 같다. ‘광아’에서 시작된 잘못된 혼용은 아직까지 살아있다고 할 수 있다.

스시의 일본으로의 전래
鮨와 鮓의 문자는 일본의 가장 오래된 문자기록 자료에서 엿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정차원문서 ‘오하리 노구니 정세장’ 753년에는 잡어초밥이란 기록이 그리고 같은 무렵 것으로 생각되는 헤이쵸교출토목간에는 화카사도미초밥, 나가야오저택출토목간에는 주꾸젠붕어초밥, 이조오오지출토목간에는 시마다랑어초밥, 전어초밥, 와카사도미초밥, 전복초밥 등의 문자가 있다. 그리고 718년에 성립된 ‘요오령’은 원문은 남아있지 않지만 헤이안시대에 쓰여진 주서서 ‘영의해’에 의하여 원문이 복원되었다. 거기에는 鮓라는 문자가 쓰여져 있다. 게다가 ‘양로령’의 바탕이 된 ‘대보령’ 701년에도 같은 鮓자가 쓰여졌을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상황에서 적어도 나라시대는 鮨와 鮓이 빈번히 사용됐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시기는 당나라의 문활글 적극적으로 도입하던 시기에 해당하며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해당한다. 문자기록에 의하면 나라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한편에서는 일본에 전래한 쌀 경작과 때를 같이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벼농사의 전래 루트는 현재로서는 한반도나 양자강 하류의 평야로부터 직업 큐우슈우에 들어온 것으로 보는 설이 일반적이며 우리나라의 다양한 젓갈문화나 식해문화로 볼 때 한반도를 통해 전파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시게의 말처럼 스시가 벼농사를 뒤따라 들어온 수전어업 문화의 한 현상이라고 한다면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그렇다고 한다면 스시(すし)의 일본 상륙은 숭문시대 말기 즉 기원전 2-3세기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다고 하지만 스시(すし)의 전래를 한 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벼농사처럼 여러 세기에 걸쳐서 파상적으로 대륙으로부터 전래한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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