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미(味)행] 마드리드에서 만난 네모난 이탈리아, 포카치아모
조소현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5-26 18:41:17
[Cook&Chef = 조소현 전문기자] 마드리드 구시가지, 100년은 훌쩍 넘은 듯한 고풍스러운 건물들 사이에서 유난히 모던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 있다. '포카치아모(Focacciamo)'는 이탈리아 스타일 포카치아 샌드위치 전문점으로, 이탈리아 출신의 젊은 사장이 정오부터 자정까지 운영한다. 오픈형 조리대와 앉아서 먹을 수 있는 테이블 몇 개가 있는 작은 가게다.
이탈리아 라구리아 지역이 고향인 포카치아는 발효종으로 반죽하고 올리브유를 듬뿍 넣어 부드럽고 폭신한 식감이 매력인 빵이다. 넓은 사각형으로 구워낸 포카치아를 반으로 갈라 온갖 재료와 소스로 속을 채워 넣은 샌드위치는 이탈리아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가게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곳은 포카치아 그 자체에 집중한 곳이다. 메뉴는 포카치아 샌드위치와 이탈리아 디저트 몇 개로 심플하다. 포카치아 빵에 치즈, 가공육류, 채소와 소스의 단순한 조합들로 보이지만 이 재료들이 만나 내는 시너지는 단순하지 않다. 관광객을 위해 변형된, 이탈리아를 흉내 낸 맛이 아니라, 현지에서 오랫동안 먹어온 전통과 현대의 트렌드가 자연스럽게 조화되어 있다.
특히 모르타델라 햄과 스트라차텔라 치즈, 피스타치오 크림이 들어간 '라 델리시오사(La Deliziosa)'는 현재 유럽에서 가장 트렌디한 조합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피스타치오 열풍이 불었는데, 두바이 초콜렛을 변형한 디저트류에 국한되어 있다. 과연, 짭조름한 가공육과 치즈 사이에서 피스타치오의 맛이 어떨지 궁금했다.
주문을 마치고 메뉴가 조리되는 동안, 사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간단히 나눴다. 그러는 동안 포장해 가는 손님들과 배달 기사들이 드문드문 가게로 왔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도 손님이 계속 찾아오는 걸 보면 스페인과 한국이 닮은 점이 꽤 있구나 싶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마드리드를 떠나는 일정이라 원래는 기차에서 먹을 간식쯤으로 생각했지만, 따끈한 샌드위치가 내는 향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한 입 맛봤다. 겉이 살짝 바삭하면서 턱에 힘을 줄 필요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포카치아가 치아에 닿고, 모르타델라 햄의 부드러운 기름이 녹아내리며 치즈와 한입 가득 들어왔다. 입안에서 몇 번 씹으니, 피스타치오 크림의 고소함이 퍼지며 각각의 재료들을 하나의 맛으로 완성시켰다.
'한국에서도 이 맛을 또 볼 수 있을까?' 이미 든든하게 식사를 마친 후였는데도 바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샌드위치이지만, 어떤 음식이든 산지와 가까울수록 더 맛있다는 건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은 샌드위치를 냉장고에 넣으면서 지금 다 먹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두 번째로 주문한 메뉴는 '라 메디테라네아(La Mediterranea)'. 이름 그대로 지중해 식재료의 전형이다. 이탈리아에서 흔한 생햄 '프로슈토 산 다니엘레(Prosciutto di San Daniele)', 스트라치아텔라 치즈, 햇볕에 말린 지중해 토마토 '토마테스 세코스(Tomates secos)', 구운 주키니 '칼라바신 아 라 플란차(Calabacin a la plancha)'가 들어간다.
재료들만 보면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맛이라 고민했지만, 사장님의 추천을 믿고 시켰다. 숙소를 체크아웃하면서 먹느라 차갑게 식기까지 해 시장기나 달래줄 전투식량쯤으로 생각했다. 기대감을 한껏 낮춰놓은 덕이었나, '아는 맛 중 가장 맛있는 맛' 그 자체였다.
말린 토마토의 응축된 산미와 구운 주키니의 담백한 식감, 짭짤한 프로슈토, 스트라차텔라 치즈의 고소한 풍미가 만나 마치 잘 만든 라따뚜이를 빵에 넣어 먹는 느낌이었다.
마드리드를 다시 온다면, 마드리드에 살게 된다면 나도 이 포카치아를 야식으로 자주 먹겠지 하는 상상을 했다. 기차 창밖을 보며 미처 맛보지 못한 마드리드에 대한 아쉬움과 다음 여행지의 설렘을 안고 마드리드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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