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재설계하는 식품안전, 제6차 기본계획의 기회와 과제
오요리 기자
cnc02@hnf.or.kr | 2025-12-31 18:53:44
이미지 생성: ChatGPT (OpenAI) 제공 / Cook&Chef 제작
[Cook&Chef = 오요리 기자] 정부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전면에 내세운 미래 식품안전관리 청사진을 공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10개 중앙행정기관이 합동 수립한 '제6차 식품안전관리 기본계획(2026~2030)'은 향후 5년간 대한민국 먹거리 안전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장기 로드맵이다.
이번 계획의 핵심은 '디지털 전환'이다. 식중독 발생 예측, 제조 공정 이물 자동 검출, 허위·과대광고 실시간 차단 등 과거 사후 대응 중심의 관리에서 벗어나 예측·예방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공식화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식품 생산, 유통, 소비 전 과정의 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시도다.
제5차 기본계획('21∼'25)이 농축수산물 잔류 허용물질목록 관리제도(PLS) 도입, 소비기한 표시제 시행 등 과학적 관리의 기반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면, 제6차 계획은 그 기반 위에 AI라는 강력한 엔진을 장착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했다.
이번 계획은 '안전한 식품, 건강한 국민, 행복한 사회'라는 비전 아래 외식 산업계와 소비자 모두에게 중대한 변화를 예고한다. 대규모 식품 제조업체부터 소규모 음식점까지 기술 도입 수준과 속도에 따라 새로운 기회를 맞거나 생존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 소비자는 더 투명한 정보를 제공받지만, 고도화된 기술이 낳는 새로운 정보 격차에 놓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Cook&Chef는 제6차 기본계획의 세부 내용을 분석하고, 외식 산업 현장과 소비자의 식생활에 미칠 구체적인 영향을 진단한다.
AI, 식중독 발생의 시그널을 먼저 읽는다이번 계획에서 가장 주목받는 부분은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식품안전 혁신 전략이다. 정부는 식중독 확산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 원인균과 원인 식품을 자동으로 예측하는 'AI 기반 식중독 원인 추적 시스템' 도입을 공식화했다. 이 시스템은 2025년부터 2027년까지 개발 및 시범 운영을 거쳐 2027년부터 현장에 본격 적용될 예정이다.
기존 식중독 조사가 발생 후 역학조사를 통해 원인을 규명하는 사후 대응 방식이었다면, 이 시스템은 선제적 예측에 초점을 맞춘다. 특정 지역의 기온·습도 데이터, 소셜미디어상 식중독 의심 증상 키워드, 특정 식자재 유통량 및 판매 데이터, 과거 식중독 발생 패턴 등을 종합 분석해 위험 징후를 사전에 포착한다. 이를 통해 잠재적 위험이 높은 식품군이나 지역을 특정하고 선제적인 위생 점검 및 대국민 경보를 발령할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새로운 식품 안전 위협 요인을 예측하는 'AI 기반 식품위해예측센터'도 신규 운영된다. 기후변화로 인한 신종 병원균 출현, 신규 식품 원료의 잠재적 위험성,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따른 위해요소 유입 가능성 등 복잡한 리스크를 AI가 분석해 정책 당국에 조기 경고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는 전통적 방식으로는 감지하기 어려운 신흥 위해요소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컨트롤 타워가 신설되는 셈이다.
이러한 예측 시스템은 외식업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정부의 예측 정보에 따라 특정 식자재 사용에 대한 권고나 주의보가 내려질 수 있으며, 이는 메뉴 구성과 재고 관리에 즉각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또한, 식중독 발생 위험이 높은 것으로 예측된 업소는 집중 위생 점검의 대상이 될 수 있어 평상시 위생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스마트 HACCP', 생산 현장의 디지털 두뇌로생산 현장의 디지털화 역시 이번 계획의 핵심 축이다. 정부는 생산 공정 효율화와 인적 오류로 인한 식품사고 예방을 위해 '스마트 HACCP' 등록업체를 2030년까지 현재의 두 배 수준인 1,050개소로 확대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스마트 HACCP은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기반으로 가열 온도, 시간, 금속 검출 등 중요관리점(CCP)의 모니터링 데이터를 자동 기록·관리하고 실시간으로 확인 및 평가하는 시스템이다.
기존 HACCP이 작업자의 수기 기록·관리에 의존해 데이터 누락이나 위·변조 가능성이 상존했던 반면, 스마트 HACCP은 모든 과정이 자동화되어 데이터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인다. 이는 생산 효율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식품사고 발생 시 원인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규명할 수 있는 결정적 근거 자료를 제공한다.
여기에 더해 식품 제조 공정 중 이물이나 부적합품을 검출하는 'AI 검사 기술' 개발도 추진된다. 육안이나 기존 금속탐지기로 발견하기 어려운 미세 이물질이나 불규칙한 형태의 부적합품을 AI 기반 이미지 인식 기술로 식별하는 방식이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생산 라인의 품질 관리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려 이물 혼입 사고를 원천적으로 줄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생산 현장의 스마트화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기술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스마트 HACCP 구축과 AI 검사 장비 도입에는 상당한 초기 투자 비용이 수반된다. 정부 지원책이 마련되더라도 자금과 기술 인력이 부족한 영세 식품 제조업체나 외식업체에는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술 도입 여부가 곧 경쟁력의 차이로 직결되는 시대가 본격화되는 것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K-푸드와 수입식품, AI가 관리한다K-푸드 수출 증가와 해외직구 활성화라는 정책 환경 변화 또한 이번 계획에 중요하게 반영됐다. 정부는 위해 우려가 높은 수입 식품의 사전 차단을 위해 AI가 서류를 자동 심사하는 '수입 안전 전자심사24'의 적용률을 확대한다. 이는 통관 단계에서 인적 개입을 최소화하고, 방대한 수입 데이터를 기반으로 위험도가 높은 제품을 정밀 선별해 검사를 집중하는 효율적 관리 방식이다.
또한, 농축산물의 불법 수입 및 유통 근절을 위해 전국 단위의 전문 수사 조직을 신설하고 디지털 포렌식 장비도 확충한다. 이는 국경을 넘는 식품 범죄에 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정부의 의지 표명이다.
수출 측면에서는 'K-푸드'의 세계화를 위한 지원을 강화한다. 할랄·코셔 등 해외인증 취득을 지원하고, 김 제품의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규격 등재를 추진하는 등 국제 기준과의 조화를 통해 기술 장벽을 완화하는 데 주력한다. 특히 신선 농산물의 품질 유지를 위한 해외 콜드체인 구축 등 물류 인프라 확충 계획도 포함되어 수출 경쟁력 강화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전망이다. 국내 식품안전 관리 수준이 AI 기술로 고도화되는 것은 그 자체로 K-푸드의 국제적 신뢰도를 높이는 무형의 자산으로 작용할 것이다.
소비자의 식탁은 더 투명해진다식품안전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소비자가 안심하고 선택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다. 제6차 계획은 소비자의 알 권리와 선택권 강화를 위한 다양한 과제를 포함한다. 특히 온라인상에서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허위·과대광고에 대한 관리가 대폭 강화된다.
정부는 AI로 생성된 가상 인간이나 전문가가 특정 식품을 추천하는 광고 등에 대한 위법성 판단 기준을 2026년까지 명확히 한다. 이어 2027년에는 식품 및 건강기능식품의 온라인 광고를 자동으로 판별하는 AI 알고리즘을 개발해 단속의 실효성을 높일 계획이다. 이는 급변하는 디지털 광고 환경에 맞춰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다.
외식 소비 환경의 투명성도 제고된다. 음식점 위생 상태를 평가해 등급을 부여하는 '음식점 위생등급제' 지정 업소를 2025년 누적 9만 개소에서 2030년 19만 개소까지 두 배 이상 늘린다는 목표가 설정됐다. 소비자가 배달앱이나 포털사이트에서 음식점을 선택할 때 위생등급 정보를 쉽게 확인하고 의사결정에 활용하게 되어, 업소들의 자발적인 위생 수준 향상을 유도하는 효과를 낳을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 사회, 소외 없는 식생활 안전망 구축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라는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한 식생활 안전망 구축 역시 이번 계획의 중요한 축이다. 정부는 그동안 관리 사각지대로 지적된 노인·장애인 등 취약계층 이용 소규모 급식소의 위생 및 영양 관리를 위해 모든 지방자치단체에 '통합급식관리지원센터'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전문 영양사가 부족한 소규모 시설에 영양사 파견, 맞춤형 식단 제공, 위생 현장 점검 등을 체계적으로 지원한다. 소규모 어린이급식시설에는 IoT를 활용해 냉장고 온도를 자동 모니터링하고 위해 정보를 알리는 '스마트 급식 통합시스템'도 구축된다. 이는 기술의 혜택이 사회적 취약계층에게도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설계된 정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교통 접근성이 낮은 농촌 지역의 '식품 사막'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찾아가는 농촌형 이동장터'를 본격 도입한다. 저소득층 대상의 농식품 바우처 수혜 가구도 2030년까지 42만 가구로 대폭 확대하는 등 식품 접근성 제고를 위한 정책도 병행 추진된다.
미래를 향한 청사진, 현장의 과제는 명확하다정부가 발표한 제6차 식품안전관리 기본계획은 AI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식품안전 관리 수준을 한 단계 도약시키겠다는 청사진이다. 식중독 예측부터 생산 공정 자동화, 소비자 정보 제공, 취약계층 지원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디지털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성공적인 계획 이행을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선결되어야 한다. 첫째, 기술 격차 해소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책이다. 스마트 HACCP과 AI 검사 시스템 도입이 대기업만의 잔치가 되지 않도록 중소·영세업체를 위한 맞춤형 금융 지원, 기술 컨설팅, 교육 프로그램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둘째, 데이터의 활용과 보안 문제다. AI 기반 예측 시스템의 정확도는 양질의 데이터 확보와 효과적인 분석에 달려있다. 이를 위해 공공과 민간에 흩어진 데이터를 통합·표준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며, 수집된 개인정보와 기업 영업비밀을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보안 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현장과의 소통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현장에서 수용되고 활용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정책 도입 과정에서 외식업계, 식품 제조업체, 소비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변화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지속적인 소통과 교육이 정책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제6차 기본계획이 그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식품안전 국가'라는 목표는 기술과 정책, 그리고 현장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갈 때 비로소 현실이 될 수 있다.
Cook&Chef / 오요리 기자 cnc02@hnf.or.kr
[ⓒ 쿡앤셰프(Cook&Chef).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