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콘소메 수프에서 시작된 질문, 소스로 이어진 길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5-07 08:16:50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최수근 관장이 프랑스로 향한 이유는 막연한 동경이 아니었다. 콘소메 수프 하나에서도 나라와 체계에 따라 조리법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 차이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프랑스 유학은 그에게 기술 습득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를 찾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는 향신료와 소스 사이에서 자신의 길을 골랐고, 결국 소스를 평생의 연구 주제로 삼았다.
Q. 프랑스에 도착하셨을 때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무엇이었나요?
A. 일단 어렵죠. 학교도 다녀야 하고, 일도 해야 했으니까요. 낮에는 학교에 가고 저녁에는 일을 했어요. 제가 서울에서 그렇게 열심히 일했으면 정말 성공했을 거예요. 그만큼 열심히 했어요.
저는 1회 졸업생이고 학생회장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저를 보고 있었어요. “저 사람이 어떻게 갈까” 관심이 많았죠. 그래서 더 준비를 많이 했고, 더 열심히 하려고 했어요.
Q. 프랑스 유학 시절 도움을 주신 분들도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A. 프랑스 갈 때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여러 곳에 편지를 보냈어요. “서울에 있는 사람인데 도와주시면 열심히 일하겠다”고 썼죠. 일곱 군데 정도 보냈는데, 그중 한 곳에서 답장이 왔어요. 그분이 이철종 씨예요.
그분이 한림식당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그분의 도움으로 프랑스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나중에 그분의 “씨 뿌리는 마음”이라는 말을 제 인생 철학처럼 생각하게 됐어요. 지금도 저는 씨 뿌리는 마음으로 일을 벌여요.
Q. 프랑스에서 무엇을 공부해야겠다고 바로 정하신 건 아니었나요?
A. 아니에요. 처음에는 무슨 공부를 해야 할지 몰랐어요. 저도 정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서울에 있는 분들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그랬더니 “10년 후에 정말 써먹을 것을 찾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3개월을 찾았어요. 처음 찾은 게 향신료하고 소스였어요. 처음에는 향신료 공부를 했어요. 한 달 동안 번역도 해보고, 씨도 사서 서울로 보내보고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이건 농사와 연결되는 일이더라고요. 내가 할 일은 아닌 것 같았어요.
그래서 두 번째로 잡은 게 소스였어요. 그때부터 소스 자료를 모았어요. 250개 소스를 모았고, 한국에 와서 국내 것과 비교하면서 실험했어요. 그게 책으로 나온 거예요.
Q. 당시에는 소스라는 분야가 지금처럼 주목받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A. 맞아요. 그때는 소스가 인정받는 분야가 아니었어요. 책을 내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출판사에서 책을 잘 안 내주니까 자비로 냈어요. 친구들에게 돈도 빌렸어요. 돈이 없으니까 발로 뛰면서 전국을 다녔어요. 그렇게 여기까지 온 거예요.
젊은 사람들이 그냥 쉽게 되는 것처럼 생각하면 안 돼요. 본인이 노력해서 찾아야 해요. 저는 소스를 찾아서 평생 이 직업으로 온 거예요.
Q. 관장님께 소스는 어떤 의미인가요? 학교에서 소스의 기원을 설명할 때, 때로는 좋지 않은 재료의
맛을 감추기 위한 것처럼 배우기도 합니다.
A. 소스가 상한 재료를 감추기 위한 것이라는 말은 옛날 이야기고, 저는 말이 안 된다고 봐요. 소스는 음식을 좋게 하기 위한 거예요.
프랑스 요리책을 보면 시대마다 만드는 법이 달라요. 예전에는 농도를 맞출 때 루를 쓰지 않고 돼지껍질이나 젤라틴 같은 걸 쓰기도 했어요. 또 에스코피에 이전에는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 재료를 다듬고 소스를 만들고 음식을 내는 방식이었어요. 이후에는 역할이 나뉘었죠. 너는 소스를 만들고, 너는 다른 파트를 맡고. 그런 시스템이 생긴 거예요.
우리나라는 소스를 외국 것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제 책을 통해서 소스라는 단어와 개념이 많이 알려졌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도 소스 산업은 성장할 거라고 봐요. 소스는 앞으로 꼭 필요해요. 맛은 계속 변하고, 새로운 맛을 위해 소스도 계속 개발될 거예요.
Q. 맛과 입맛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고 보시나요?
A. 당연하죠. 사람이 다르고 세대가 다른데, 소스가 그대로일 수 없어요. 선배 세대가 좋아하는 소스를 젊은 세대가 그대로 좋아하겠어요?
오늘 실습에서 한 학생이 파를 마요네즈에 섞고, 거기에 설탕을 넣어봤어요. 옛날 사람들은 설탕을 절대 못 넣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오늘 찍어 먹어보니까 다들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보고 “입맛이 이렇게 변하는구나” 생각했어요. 또 요즘은 토마토케첩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데, 예전 사람들은 토마토케첩을 좋아했어요. 그러니까 계속 바뀌는 거예요.
Q. 공부를 하려는 후배들에게는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A. 공부라는 건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공부 잘한다고 다 성공하고, 못한다고 다 실패하는 건 아니에요. 시간이 지나면 비슷해져요. 중요한 건 방향을 잘 잡는 거예요.
그 방향을 잡고 공부해야 해요. 아이템을 찾는 게 어려운 거예요. 저는 서른두 살에 소스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정했어요. 그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가면 찾을 수 없어요. 꾸준히 면담도 하고, 강의도 듣고, 경험도 하면서 찾아야 해요.
본인이 찾아야 합니다. 누가 대신 찾아주는 게 아니에요. 멘토도 한 명만 있으면 안 돼요. 여러 명이 있어야 해요. 그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본인이 자기 길을 찾아야 해요.
Q. 소스 연구를 이어오면서 부담감이나 슬럼프도 있으셨나요?
A. 많았죠. 저는 돈이냐 명예냐 하면 명예라고 생각했어요. 돈은 자신 없어요. 지금도 돈은 없어요. 그래도 명예를 가지고 여기까지 왔어요.
소스를 연구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 때, 제 방에 오는 사람들은 다 소스를 했어요. 제자들이 쓴 소스 논문도 많고, 저도 책을 꾸준히 썼어요. 왜 그렇게 했냐면,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어요.
슬럼프가 오면 다른 일을 했어요. ECA 같은 단체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양성했어요. 회사가 바빠도 한 달에 두 번씩 수업했어요. 책도 쓰고, 공부도 하고, 강의도 하고, 여러 일을 같이 했어요. 바쁘니까 슬럼프에 오래 머물 시간이 없었어요.
Q. 좋은 아이디어를 산업화해야 한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A.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만 있으면 안 돼요. 빛을 봐야 해요. 제가 오리엔탈 드레싱 같은 아이디어도 냈는데, 대기업에서 그것을 하지 않았으면 아무 의미가 없었을 거예요. 좋은 아이디어로만 가지고 있으면 안 돼요.
산업화도 되고, 학교를 만들든지, 제품을 만들든지, 이미지와 구조를 가지고 가야 해요. 그냥 “하세요” 하고 끝나면 안 돼요. 아깝잖아요.
Q. AI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조리와 소스 연구에서 AI를 어떻게 보시나요?
A. 제가 챗GPT에도 한번 물어봤어요. “최수근 교수 소스, 실제 나와 있는 마요네즈 레시피를 정리해보라”고 했더니 자료를 정리해서 보내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예전에 나온 자료들도 누군가 다시 보고 정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중요한 건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게 아니라, 어떤 자료의 도움을 받았는지 밝히고, 거기서 아이디어를 찾아 새롭게 정리하고 재가공하는 거예요. 제 책을 보고 정리했다면 그렇게 밝히면 되는 거죠. 앞으로 그런 방식의 책이나 자료가 나와도 된다고 생각해요. 좋은 자료나 아이디어는 그냥 가지고만 있으면 안 돼요. 빛을 봐야 해요. 정리하고, 활용하고, 산업화가 되든 교육으로 이어지든 실제로 쓰이게 만들어야 해요. 저는 그게 중요하다고 봐요.
.최수근 관장의 소스 연구는 프랑스 유학에서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콘소메 수프에 대한 의문, 10년 뒤에도 써먹을 공부를 찾아야 한다는 조언, 향신료와 소스 사이에서의 고민이 쌓여 만들어진 길이었다.
그에게 소스는 단순한 조리의 부속물이 아니었다. 시대의 입맛을 읽고, 조리의 체계를 만들고, 산업으로 확장될 수 있는 분야였다. 그는 지금도 소스가 앞으로 더 성장할 영역이라고 말한다.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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