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한식탐구]왕의 행차와 콩 한 되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3-14 18:25:21

정조의 화성 행차에서 발견하는 조선의 맛 [사진=수원전통문화관 / 

1795년 정조의 화성행차 때 열린 혜경궁 홍씨 회갑 진찬을 『원행을묘정리의궤』 기록을 바탕으로 재현한 궁중 연회상]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1795년 윤2월, 조선의 왕 정조는 특별한 여정을 시작한다.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기 위해 수원 화성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이 행차는 단순한 왕실 이동이 아니었다. 약 8일 동안 이어진 이 여정에는 왕실 수행원과 군사, 관리, 장인과 인부까지 수천 명이 참여했다. 조선 후기 국가 역량이 총동원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이 여정의 전 과정은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의궤는 행렬의 구성, 숙영지 설치, 의례 절차, 연회 준비까지 세밀하게 담고 있어 당시 왕실 문화뿐 아니라 조선 후기 생활 문화까지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정조에게 화성은 단순한 성곽이 아니었다. 화성은 정치적 이상과 도시 실험이 결합된 공간이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기면서 이 지역을 새로운 도시로 발전시키려 했다. 군사적 방어 기능뿐 아니라 행정, 상업, 농업이 함께 작동하는 자립형 도시를 구상했던 것이다.

이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식량 생산이었다. 수원과 경기 남부 지역은 조선 후기에도 농업 생산력이 높은 지역이었다. 논농사뿐 아니라 보리와 콩 같은 밭작물 재배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콩은 조선 식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작물이었다.

조선 식문화의 중심, 콩
조선 시대 식생활의 구조를 보면 콩의 역할은 매우 분명해진다. 쌀이 주식이었다면 콩은 식탁의 균형을 이루는 단백질 공급원이자 발효 식문화의 핵심 재료였다.

콩으로 만든 메주는 된장과 간장이 되었고, 이는 조선 음식의 기본 조미 체계를 이루었다. 국과 탕, 찜과 조림, 나물과 장아찌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음식의 간을 장이 담당했다. 또한 두부, 청국장, 콩죽, 콩범벅 등 다양한 음식으로 활용되며 궁중과 민가를 막론하고 널리 소비되었다.

조선 후기 농업에서도 콩은 중요한 전략 작물이었다. 저장성이 높고 가공이 쉬워 식량 관리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특히 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콩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콩 생산은 곧 식문화의 기반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사진=수원화성박물관 / 정조의 을묘년 수원행차]

왕의 행차와 음식의 현실
정조의 화성 행차는 왕실 의례이면서 동시에 거대한 이동 공동체였다. 수천 명이 이동하는 상황에서 음식 준비는 단순한 연회 이상의 문제였다.

이동 중에는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고 조리가 쉬운 식재료가 필요했다. 된장과 간장은 이런 조건에 가장 적합한 식재료였다. 또한 두부나 콩 음식은 귀한 단백질 공급원이기도 했다.

《원행을묘정리의궤》에 기록된 연회 음식 목록에는 탕과 전골, 찜, 나물 등 다양한 궁중 요리가 등장한다. 이러한 음식들은 대부분 간장과 된장을 기본 조미로 사용한다. 기록 속에서 콩 요리가 직접적으로 강조되지는 않지만, 사실상 거의 모든 음식의 기반이 콩에서 시작되는 셈이다.

즉 왕의 연회가 화려한 궁중 요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그 맛의 뿌리는 콩에서 만들어진 장이었다.

정조의 도시와 농업
정조가 화성을 건설하며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도시의 자립이었다. 왕은 화성 주변 농업 생산을 강화하고 상업 활동을 활성화하려 했다. 이러한 정책은 도시 경제와 식량 공급을 동시에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수원과 경기 남부 지역은 이러한 농업 정책의 중심이었다. 넓은 평야와 함께 밭작물 재배도 활발했으며, 특히 콩은 장 생산과 식재료 공급을 동시에 담당하는 중요한 작물이었다.

콩은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라 조선 식문화 구조를 지탱하는 기반이었다. 장이 없으면 조선 요리도 존재할 수 없었고, 장의 시작은 결국 콩이었다.

왕의 길 위에서 만나는 조선의 맛
1795년 화성 행차는 조선 왕실 문화의 정점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 화려한 기록 뒤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존재한다.

왕의 행차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정치적 권위만이 아니었다. 수천 명의 사람과 수많은 식재료, 그리고 이를 지탱한 농업 생산력이 있었다. 그 중심에는 쌀과 함께 콩이 있었다.

정조의 화성 행차는 왕의 정치적 이상과 조선의 일상적 식문화가 동시에 움직인 사건이었다. 왕의 길 위에서 우리는 궁중 음식의 화려함뿐 아니라 조선을 지탱한 평범하지만 중요한 식재료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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