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생활 건강노트] 과육부터 껍질까지 버릴 것 없는 ‘귤’로 겨울건강 챙긴다
송자은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5-12-11 23:37:13
귤락·껍질 버리면 절반은 버리는 셈… 현명하게 먹는 법과 과식 주의점은
[Cook&Chef = 송자은 전문기자] 겨울이면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과일이 있다. 따뜻한 방 안, TV 앞에 쌓아두고 손이 노래지도록 까먹는 귤이다. 비타민 C가 풍부한 과일이라는 사실은 익숙하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귤이 단순한 ‘겨울 과일’을 넘어 혈관·뼈·대사 건강까지 폭넓게 돕는 식재료라는 점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특히 껍질 안쪽의 흰 막과 속껍질, 말린 껍질(진피)까지 잘 활용하면 귤 한 알이 주는 건강 효과는 훨씬 커진다.
겨울 간식 이상의 가치… 전신을 아우르는 귤의 효능
귤의 가장 직관적인 장점은 비타민 C이다. 100g 기준 약 40mg 안팎의 비타민 C가 들어 있어 중간 크기 2~3개만 먹어도 성인 1일 권장량을 채울 수 있다. 비타민 C는 면역세포 기능을 도와 감염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고, 활성산소를 줄여 체내 염증 반응을 완화하는 데 기여한다. 겨울철 잦은 감기, 피로감, 잔기침이 이어질 때 귤을 찾게 되는 이유다.
귤 특유의 향과 쌉싸래한 맛을 내는 플라보노이드 성분도 주목할 만하다. 노밀린, 오랍텐, 헤스페리딘, 나린진 등 감귤류에 특유한 성분은 항염·항산화 작용을 통해 만성 염증을 줄이고, 피부 주름·기미·잡티 개선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실제로 국내 연구에서는 감귤 추출물이 피부 콜라겐 생성을 증가시키고 탄력 저하를 완화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한다는 결과도 발표됐다. 염증을 낮추고 재생 능력을 돕는 과학적 근거가 쌓이고 있는 셈이다.
감귤은 혈관 건강과 대사질환 관리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껍질과 흰 막에 풍부한 헤스페리딘과 비타민 P 계열 성분은 모세혈관의 벽을 튼튼하게 해 주고, 혈관 투과성을 안정시키는 데 관여한다. 혈액 순환이 원활해지면 고혈압, 동맥경화, 뇌졸중과 같은 심뇌혈관질환 위험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한편 감귤에 들어 있는 카로티노이드, 특히 베타크립토잔틴은 골다공증 예방과도 연관성이 언급된다. 카로티노이드는 우리 몸에서 비타민 A의 전구체로 작용해 성장·면역·시력 유지에 관여할 뿐 아니라, 뼈 대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귤을 꾸준히 섭취하면 칼슘·비타민 C와 더불어 뼈 건강에 유익한 복합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이유다.
대사질환 측면에서도 감귤은 의미 있는 식재료다. 동물 실험에서는 감귤 추출물을 섭취한 그룹에서 체중 증가와 공복 혈당이 유의미하게 감소한 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비만과 인슐린 저항성을 완화하는 데 감귤의 플라보노이드와 카로티노이드가 일정 부분 기여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귤을 먹을 때 가장 먼저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껍질 안쪽의 하얀 섬유질과 과육을 감싼 속껍질이다. 보기에는 투박하고 약간 질긴 식감 때문에 습관적으로 떼어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건강 관점에서 보면 이 흰 부분을 버리는 것은 귤의 장점 절반을 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이 부분에는 펙틴을 비롯한 수용성 식이섬유가 풍부하다. 펙틴은 소화 흡수 속도를 늦추고, 장에서 젤 형태를 형성해 혈당이 급격히 오르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당뇨병이나 혈당 스파이크가 고민인 사람이라면 바로 이 식이섬유층이 큰 도움이 된다. 흰 막과 속껍질을 함께 먹으면 과육 속 당분이 천천히 흡수돼 혈당 곡선이 완만해진다.
장 건강에도 효과가 있다. 펙틴과 식이섬유는 장내 유익균의 먹이가 되어 미생물 환경을 개선하고, 대변의 부피를 늘려 변비를 완화하는 데 기여한다. 잦은 변비, 배변 불규칙으로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귤락(귤의 흰 섬유질)을 일부러 떼어내기보다 함께 씹어 먹는 편이 낫다.
'약재'로 오랫동안 건강을 지켜온 귤 껍질
귤의 겉껍질은 오랫동안 한의학에서 ‘진피(陳皮)’라는 약재로 쓰여 왔다. 말 그대로 ‘오래된 껍질’이라는 뜻으로, 햇볕과 바람에 충분히 말려 숙성시킨 귤껍질을 가리킨다. 『동의보감』 등 고전 의서에서는 진피가 비위를 따뜻하게 하고 기(氣)의 순환을 돕고, 가슴 답답함과 소화불량, 기침·가래를 완화하는 약재로 소개된다.
현대 약리연구에서도 진피의 정유 성분이 기침 억제, 기관지 확장, 알레르기 완화, 혈중 지질 개선에 일정한 효과를 보였다는 결과가 보고돼 있다. 실제로 기본적인 한약 처방인 평위산, 이진탕 등에도 진피가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귤껍질이 단순한 음식물 쓰레기가 아니라 오랫동안 “기혈 순환을 돕는 껍질 약재”로 쓰여 온 이유다.
다만 가정에서 먹고 난 귤껍질을 바로 말려 차로 쓰는 것은 권장되지 않는다. 일반 유통용 감귤은 껍질에 농약, 보존제, 왁스 처리 등이 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피를 건강 목적으로 활용하고 싶다면, 의약·식품용으로 관리된 귤껍질이나 진피 제품을 따로 구하는 편이 안전하다.
당뇨·혈당 관리 중이라면… 양과 조합이 관건이다
당뇨병 환자나 혈당 관리가 필요한 사람도 귤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다만 양과 먹는 방식이 중요하다. 통상 큰 귤 1개(약 100g)를 한 끼 과일 교환 기준으로 본다. 사과 반 개, 바나나 2/3개, 배 1/5개와 비슷한 당질량이다.
문제는 “한 번에 여러 종류를 함께 많이 먹을 때”이다. 귤과 사과, 귤과 바나나를 한 접시에 올려 먹으면 탄수화물 섭취량이 금세 두 배, 세 배가 된다. 혈당이 민감하게 오르는 사람이라면 한 번에 한 종류, 한두 개 정도만 먹고 다른 과일과는 시간 간격을 두는 편이 좋다.
과즙만 따로 짜 마시는 주스 형태도 주의해야 한다. 착즙 과정에서 식이섬유가 대부분 제거돼, 위에 도착하는 당의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귤을 건강하게 즐기고 싶다면 껍질을 깨끗이 씻어 손으로 벗긴 뒤, 흰 막과 속껍질을 가능한 한 함께 먹는 “통과일 방식”이 훨씬 유리하다. 녹색 잎채소, 브로콜리, 견과류와 함께 곁들이면 혈당과 혈관 건강, 뼈 건강을 동시에 도울 수 있다.
건강에 문제가 없더라도 과하게 섭취하면 문제를 일으킨다. 한 번에 빠르게 여러 개를 먹으면 과당과 유기산이 한꺼번에 들어가 복부 팽만, 속 쓰림,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 특히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있거나 위장이 약한 사람, 공복에 우유·커피를 마신 직후 귤을 먹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더 주의해야 한다.
귤락과 껍질에는 칼륨이 비교적 많이 들어 있어, 신장 기능이 저하된 환자나 고칼륨혈증 위험이 있는 사람은 섭취량 조절이 필요하다. 혈압약, 항응고제를 복용 중인 경우에도 귤껍질·진피를 농축된 형태로 장기간 섭취하기보다는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는 편이 안전하다.
일반적인 건강인이라면 하루 2~3개 정도의 귤을, 속껍질과 흰 막을 함께 씹어 먹는 수준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귤의 가치는 단순히 단맛에만 있지 않다. 작은 귤 한 알 속에 우리가 기나긴 겨울을 무사히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숨겨져 있다.
Cook&Chef / 송자은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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