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 한식탐구] 봄 대나무의 두 얼굴, 죽순과 죽엽차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6-04-29 23:20:14

식재료에서 음청류까지 이어지는 계절 식문화의 흐름 [사진=한국관광공사 / 전남 담양군 죽녹원]

[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봄은 대나무를 먹고 마시는 계절이다. 땅에서는 죽순이 올라오고, 가지에서는 어린 대나무 잎이 자란다. 하나의 식물이 식재료와 음청류로 나뉘어 활용되는 시기는 길지 않다. 이 시기의 대나무는 음식과 차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계절의 재료다.

죽순은 대나무의 어린순으로, 보통 4월 중순부터 6월 사이에 수확된다. 생장 속도가 빠른 특성상 시기를 놓치면 조직이 단단해지고 아린맛이 강해진다. 신선한 생죽순을 맛볼 수 있는 기간이 짧기 때문에 죽순은 제철성이 뚜렷한 식재료로 인식된다. 산림청 자료에서도 죽순의 발순 시기를 4월 상순부터 6월 하순 무렵으로 설명하고 있다.  

지금의 죽순은 조직이 연하고 수분이 많아 아삭한 식감을 유지한다. 맛은 강하지 않지만 담백하고 은은해 나물, 탕, 볶음, 전 등 여러 조리에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죽순의 가치는 강한 향미보다 식감에 있다. 육류나 해산물 사이에서는 질감의 대비를 만들고, 채소 중심의 음식에서는 씹는 만족감을 더한다.

[사진=한식진흥원 / 죽순]

죽순은 궁중음식과 사찰음식에서도 활용되어 온 재료다. 궁중음식에서는 음식의 중심을 차지하기보다 여러 재료 사이에서 식감과 계절감을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향이 강하지 않아 육류나 해산물의 풍미를 방해하지 않고, 연한 색감은 담음새의 조화를 해치지 않는다. 사찰음식에서는 담백한 맛과 아삭한 조직감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오신채처럼 자극적인 향을 내지 않으면서도 식사의 구조를 채워주기 때문이다.

죽순을 식재료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처리 과정이 필요하다. 생죽순은 그대로 조리할 경우 쓴맛과 떫은맛이 나타날 수 있어 쌀뜨물이나 쌀겨를 활용해 삶는 방식이 사용되어 왔다. 이 과정은 단순한 손질이 아니라 식재료의 성질을 이해하고 먹을 수 있는 상태로 바꾸는 조리 기술이다.

영양 측면에서 죽순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봄 식재료다. 수분이 많고 열량과 지방이 낮으며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재료로 알려져 있다. 한국임업진흥원 자료도 죽순의 성분 대부분이 수분이며, 당분·지방질·열량은 낮고 식이섬유가 풍부하다고 설명한다.   죽순을 먹어야 하는 이유는 특정 효능을 기대해서라기보다, 짧은 제철에만 얻을 수 있는 식감과 담백함, 그리고 봄 식단에 변화를 주는 재료적 가치에 있다.

죽순과 함께 이 시기에 주목할 재료가 대나무 잎이다. 대나무 잎을 말리거나 덖어 우려낸 차를 일반적으로 죽엽차, 대나무잎차, 댓잎차라고 부른다. 죽엽차는 차나무 잎으로 만든 녹차와는 다르다. 차나무의 잎을 따서 만든 차가 아니라, 대나무 잎을 이용한 대용차이자 음청류의 범주에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죽엽은 한의학에서도 오래전부터 약재로 다뤄졌다. 조선왕조실록사전은 담죽엽에 대해 소변을 잘 통하게 하고 가슴속의 번열을 제거하는 효능이 있다고 설명하며, 채취 시기를 양력 5~6월 미개화 시기로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은 대나무 잎이 단순한 향미 재료가 아니라, 몸의 열과 갈증을 다스리는 재료로 인식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죽엽차를 마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죽엽차는 강한 향을 즐기는 차라기보다 맑고 담백한 맛으로 입안을 정리하는 차에 가깝다. 기름진 음식을 먹은 뒤나 더운 날 갈증이 있을 때 부담 없이 마시기 좋다. 전통적으로는 열을 내려주고 갈증을 완화하는 차로 이해되어 왔으며, 현대적으로는 카페인 부담이 적은 대용차로 접근할 수 있다.

사찰에서 죽엽차가 어울리는 이유도 이와 연결된다. 사찰음식은 강한 향과 자극을

[사진=한국전통포탈 / 죽엽]

덜어내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식문화를 지향한다. 죽엽차는 향이 과하지 않고 맛이 맑아 음식의 여운을 방해하지 않는다. 나물, 탕, 채소 중심의 식사 뒤에 마시면 입안을 가볍게 정리하고, 식사의 흐름을 차분하게 마무리한다. 수행과 절제의 식탁에서 죽엽차는 맛을 더하기보다 몸과 감각을 가라앉히는 음료로 자리한다.

죽엽차는 특히 더위를 많이 타거나 갈증을 자주 느끼는 사람, 기름진 음식 뒤에 부담 없는 차를 찾는 사람, 카페인 섭취를 줄이고 싶은 사람에게 어울린다. 다만 모든 식재료와 차가 그렇듯 체질과 상태를 고려해야 한다. 한의학 자료에서는 죽엽의 성질을 차게 보는 경우가 많아, 평소 속이 냉하거나 소화력이 약한 사람은 과하게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봄 대나무의 식문화는 땅과 잎에서 동시에 시작된다. 죽순은 식탁 위에서 아삭한 식감을 만들고, 죽엽차는 식사 뒤의 입안을 맑게 정리한다. 하나의 식물이 식재료와 음료로 나뉘어 쓰이는 이 흐름은 한식이 계절을 받아들이는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지금 대나무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죽순은 봄의 짧은 식감을 전하고, 죽엽차는 그 계절의 맑은 여운을 남긴다.Cook&Chef / 서진영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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