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생활 건강노트] 당근 한 개가 바꾸는 건강… 영양학이 주목한 강력한 효능들
송자은 전문기자
cnc02@hnf.or.kr | 2025-12-11 23:35:47
하루 한 잔의 당근주스가 만드는 전신 변화
[Cook&Chef = 송자은 전문기자] 밥상에서 당근의 역할은 주로 ‘색’을 내는 채소다. 볶음밥에, 잡채에, 국물 요리에 채 썰어 넣는 단골 재료지만, 정작 당근의 힘을 제대로 알고 챙겨 먹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영양학과 한의학, 최근의 기능성 식품 연구를 함께 들여다보면 당근은 그야말로 ‘인삼’에 버금가는 영양이 가득한 채소다.
당근은 눈 건강부터 혈관, 장, 피부, 심지어 염증 조절과 체중 관리까지 우리 몸 구석구석에 관여한다. 별것 아닌 듯 보이는 주황색 뿌리 하나가 전신 건강을 지탱하는 든든한 축이 되는 셈이다.
베타카로틴이 만든 눈·면역 건강
당근의 가장 큰 강점은 강력한 항산화력이다. 주황색을 내는 카로티노이드 계열 색소, 특히 베타카로틴이 풍부해 체내에 들어오면 비타민 A로 전환된다. 비타민 A는 어두운 곳에서의 시야를 유지하고 망막 세포를 보호하는 데 필수적인 영양소다. 연령 관련 황반변성이나 백내장 등 노인성 안질환 위험을 낮추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루테인·제아잔틴 같은 성분도 함께 들어 있어 자외선과 활성산소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데 기여한다. 미세먼지와 디지털 기기 사용으로 눈이 혹사되는 현대인의 생활 환경을 생각하면, 꾸준한 당근 섭취가 일종의 ‘눈 건강 보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면역력 관리에서도 당근은 빠지지 않는다. 베타카로틴은 체내에서 비타민 A로 변해 피부와 점막을 튼튼하게 만들어 바이러스와 세균이 쉽게 침투하지 못하도록 1차 방어선을 세운다. 비타민 C는 백혈구 기능을 도와 감염에 대한 저항력을 높인다. 감기와 각종 호흡기 질환이 잦은 계절에 당근이 추천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 혈당, 혈관까지 한 번에 돕는 뿌리 채소
당근은 장 건강과 혈당 조절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당근 한 컵에는 식이섬유가 제법 들어 있어 장의 연동운동을 촉진하고 변의 부피를 늘려 변비를 예방한다. 식이섬유는 장내 유익균의 먹이가 되어 장내 미생물 환경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이 과정에서 탄수화물의 흡수 속도가 완만해져 식후 혈당이 급격히 치솟는 것을 완화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카로티노이드 섭취량이 많은 식단에서 제2형 당뇨병 위험이 낮게 나타났다는 보고가 이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장과 혈관 건강 측면에서도 당근은 든든한 조력자다. 당근에 풍부한 칼륨은 나트륨 배설을 돕고 혈압 조절에 관여한다. 식이섬유와 항산화 성분은 혈중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수치를 낮추는 데 도움을 준다. 당근을 자주 먹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심혈관질환 위험 지표가 전반적으로 좋은 경향을 보였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된 바 있다.
칼로리가 낮다는 점도 장점이다. 당근 100g의 열량은 대략 35~40kcal에 불과하지만 섬유질과 수분 덕분에 포만감은 높다. 간식으로 과자 대신 당근을 선택하면 체중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
피부를 책임지는 폴리아세틸렌과 카로티노이드
이너뷰티 트렌드와 함께 당근은 피부를 위한 식재료로도 주목받고 있다. 베타카로틴과 폴리아세틸렌, 비타민 C는 피부 속에서 항산화 작용을 하며 자외선과 미세 염증으로 인한 손상을 줄인다. 콜라겐 합성을 돕고 색소 침착을 완화해 피부 톤과 탄력을 지키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최근 연구에서는 그동안 버려지던 당근 잎에서도 항염 효과를 확인했다는 보고가 나왔다. 잎에서 분리한 플라보노이드 화합물을 효소 처리했을 때 염증 인자를 억제하는 능력이 더 커졌다는 결과다. 뿌리뿐 아니라 잎까지 기능성 소재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당근은 먹는 양을 크게 늘리지 않아도 피부와 점막, 면역 시스템 전반에 작지만 꾸준한 도움을 주는 식재료다.
주황색의 비밀과 ‘잘 먹는 법’
당근의 색 이야기는 의외로 역사적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먹는 주황색 당근은 비교적 ‘젊은 품종’이다. 기원전 2000년경 중앙아시아에서 처음 재배되던 당근은 보라색이 주류였고, 이후 노란색·흰색·붉은색 등 다양한 색으로 분화됐다. 17세기 네덜란드 농부들이 오렌지 왕가를 기리기 위해 노란색과 붉은색 당근을 교배하면서 지금의 주황색 품종이 탄생했고, 상업 재배를 통해 전 세계로 퍼졌다.
보라색 당근은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 덕분에 강한 항산화력을 지니고 있어 최근 슈퍼푸드로 재조명되고 있다. 색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카로티노이드와 여러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다는 점에서 ‘색이 다채로울수록 영양도 풍부하다’는 원칙을 보여준다.
당근의 효능을 제대로 누리려면 조리법도 중요하다. 베타카로틴과 비타민 A는 지용성 성분이기 때문에 기름과 함께 섭취할 때 흡수율이 높아진다. 생으로 먹는 샐러드도 좋지만, 올리브유를 두른 팬에 가볍게 볶거나 참기름을 더한 나물, 올리브유와 식초를 넣어 만든 당근 라페처럼 기름이 곁들여진 조리법이 더 효율적이다. 사과·양배추와 함께 갈아 마시는 CCA 주스 역시 항산화와 식이섬유를 한 번에 섭취하는 방법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다만 과유불급이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만큼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을 먹으면 복부 팽만감이나 가스를 유발할 수 있다. 베타카로틴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피부가 노르스름하게 변하는 ‘카로틴혈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대개 섭취량을 줄이면 자연스럽게 회복되는 일시적 현상이지만, 한 가지 식재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채소와 과일을 함께 먹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하루 한두 개면 충분한, 가장 손쉬운 건강 습관
하루 중간 크기 당근 1~2개, 혹은 한 컵 분량의 당근 주스를 꾸준히 챙겨 마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국에 한 줌 더 넣고, 볶음에 조금 더 채 썰어 넣고, 주말에는 당근 라페나 당근김치처럼 색다른 레시피를 시도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화려한 슈퍼푸드를 찾아 헤매기 전에, 이미 주방 한켠에 자리 잡은 주황색 뿌리 채소를 다시 보는 일. 그 작은 습관이 눈과 혈관, 장과 피부까지 우리의 일상 건강 지도를 서서히 바꿔 나간다. 당근은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우리가 오래 건강하게 버틸 수 있도록 돕는 주황색 동반자다.
Cook&Chef / 송자은 전문기자 cnc02@hn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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