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f Story / ‘외식업 비주얼 디렉터’ 김민지> 음식이 삶을 만들고, 삶이 미래를 만든다

-식공간 연출의 기본은 ‘톤 앤 매너’
-정확한 고증이 웰메이드 작품을 만든다
-디자이너를 넘어 아티스트로 살기 위해
임용희 기자 | cooknchefnews@naver.com | 입력 2021-09-14 09: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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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Chef 임요희 기자] 좋은 음악은 귀를 즐겁게 해주고, 좋은 미술작품은 눈을 즐겁게 해준다. 좋은 식사 역시 예술과 마찬가지로 오감을 만족시키고 삶을 위로한다. 좋은 사회란 행복한 사람이 많은 사회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좋은 사회의 출발점은 한 끼 식사라고 할 수 있다.


‘외식업 비주얼 디렉터’라는 직업이 있다. 푸드 산업 전반에 걸쳐 컨설팅과 디렉팅을 맡는다고 한다. 외식업 비주얼 디렉터란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듣기 위해 식공간 디자인 그룹 ‘꾸밈’ 김민지 대표의 작업실 ‘꾸밈 휴게공작소’를 방문했다.

 

마포에 자리 잡은 ‘꾸밈’은 흡사 그릇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김 대표가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사 모은 진귀한 그릇과 소품들이 천정에서 바닥까지 벽면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었다. 김 대표는 9월 2일 방송된 KBS 1TV ‘한국인의 밥상 - TV의 맛, 세상을 위로하다’ 편에 출연해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음식 이야기를 맛깔나게 들려주기도 했다.  

 

외식업 비주얼 디렉터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
기존의 조리사가 음식의 맛과 영양을 살리는 일에 치중했고,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음식의 시각적인 부분에 충실했다면 외식업 비주얼 디렉터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따라 상황과 공간, 음식, 패키지 등을 톤 앤 매너(Tone&Manner)에 맞게 만들고 연출하는 일을 한다. 즉, 브랜드의 스토리와 그에 따른 공간을 만들고 메뉴를 개발할 뿐만 아니라 더 맛있어 보이도록 식기를 고르고 플레이팅 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이 일을 강의와 컨설팅으로 진행하는 것이 나의 업무 영역이다.


그러나 현장 경험이 줄어들면 감각도 퇴화하기 마련이라 지면작업 외 영화, 드라마 촬영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촬영은 대본을 이해하는 것부터 그 외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시대극에서 인물이 비빔밥을 먹는 장면이 등장한다면 계절, 지역, 신분과 인물이 처한 상황을 이해한 뒤 고(옛날)조리서를 뒤져 당시 비빔밥의 재료와 고명과 양념을 정리하고, 어떤 그릇에 담았는지 확인 후 세팅한다. 계절과 지역에 따라 레서피가 다르게 응용될 수 있고 신분과 상황에 따라 상차림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의 식기만 해도 목기, 유기, 은기, 도자기 등이 있고 도자기 역시 시대에 따라 분청, 철화, 순백자, 상감백자, 청화, 진사 등이 유행했다가 사라지고는 했다. 이를 담아내는 소반 역시 지역적 특성이 있고 주칠이나 자개 등으로 꾸미기도 하니 의식주 전반에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이에 건축, 가구(앤틱), 도자사, 미술사, 꽃꽂이, 식 문화사, 복식사까지 다방면에 걸쳐 공부하며 프로젝트에 따라 전문가들과 함께 팀을 꾸려 활동하고 있다.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고 지금 일은 어떻게 하게 됐나
업계에 뛰어든 지 20년쯤 되었다. ‘꾸밈’(2006) 간판을 달고 홀로서기를 한 지도 15년이 되어 간다. 원래 전공은 미술이다. 중앙대 미술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졸업 후 숙명여대 디자인대학원 테이블 코디네이터 과정을 밟았고, 동국대 호텔관광경영학과 푸드 비즈니스 석사 코스를 했다.


처음에는 스승, 동료들과 테이블 세팅 관련 전시를 많이 했다. 2006년에는 오사카 니조 성에서 한일 통과의례 상차림을 양국의 푸드코디네이터가 비교하는 뜻깊은 전시도 했다. 그런가 하면 어시스트로서 TVC(TV Commercial) 푸드 스타일리스트, 케이터링 쪽 경험도 많이 쌓았다.


영화는 2007년 ‘모던보이’로 입봉했고, 미술팀에 있던 친구 덕에 어시스트 경험 없이 바로 ‘실장’ 직함을 달고 영화판에 투입되었다. 당시만 해도 전문 푸드 팀의 필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던 시기였기에 경쟁자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지금은 이런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영화를 매우 좋아하기도 했거니와 TVC와 달리 각자의 전문분야를 인정해 주는 점이 마음에 들어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일했다. 이때 미술감독이 의상감독으로 유명한 조상경 감독이었다. 미팅 시 필요한 자료를 묻기에 현장 헌팅 사진과 배우들 의상 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더니 그 이후부터 음식과 테이블 세팅은 나와 먼저 의논하였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은 이후 나의 영화 작업에 큰 영향을 끼쳤다. 나의 위치를 자각했을 뿐만 아니라, 일을 선택하는 기준이 생긴 것이다. 대뜸 전화를 걸어와 음식명을 쭉 나열하며 언제까지 몇 인분을 만들어 줄 수 있느냐고 묻는 팀에게는 정중하게 거절 의사를 밝힌다.


TVC 일을 그만둔 것은 4~5년쯤 된다. 현장에서 소모품처럼 쓰이는 분위기, 열악한 환경, 푸드 포르노가 갖는 한계에 자괴감이 들었다. 물론 나를 기억하고 함께하길 원하는 오래된 클라이언트들과는 꾸준히 작업을 이어갔다. 그분들은 내게 메뉴 사진 외에도 식기 선택, 플레이팅 교체 등 안목을 필요로 하는 일들을 부탁해왔다. 이 일은 차츰 테이블을 바꾸거나 조명을 바꾸는 등 인테리어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지금까지의 모든 작업이 다 소중하고 특별하다. 한일합작 영화인 ‘카페서울’ 개봉 후에는 일본 분들이 싸이월드로 쪽지를 보내기도 했다. 주로 한국 떡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에 감동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드라마 ‘초콜릿’은 다양한 나라의 분들이 인스타그램 DM으로 레시피를 정말 많이 물어온다. 우리의 음식을 널리 알리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


‘엄마의 공책’은 치매를 다룬 따뜻한 영화인데 덕분에 환경영화제에서 관객과의 만남도 갖고 서울과 부산의 음식영화제 두 곳에서 개봉하기도 했다. 그래도 굳이 하나를 꼽자면 2015년 작업인 ‘아가씨’를 들 수 있다.

 

 존경하는 류성희 미술감독님이 ‘암살’에 이어 다시 나를 찾아 준 작품이었고, 역시나 존경에 마지 않는 박찬욱 감독님과도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몹시 고무되었다. 류 미감님은 내가 제안한 몇 가지의 디자인 중 본인과 의견이 다른 부분이 있으면 늘 감독님께 컨펌을 받았다.


에키벤을 찍는 장면에서 내가 고른 젓가락과 미감님이 고른 젓가락이 달랐는데 박찬욱 감독님은 내가 고른 젓가락을 선택했다. 기차 안에서 김민희 배우 입과 흰 밥 사이를 오가던 바로 그 젓가락이다. 미술 총책임자가 팀원의 의견을 묵살하지 않고, 작품의 총책임자인 감독에게 최종 의견을 구하는 일. 쉬워 보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류 미감님을 존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가씨 에키벤 현장 모니터 사진

영화 ‘나랏말싸미’ 작업도 류 미감님과 함께 했는데 미감님이 생각하는 공간에 딱 맞는 상차림과 음식을 만들기 위해 참 많이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박찬욱 감독 역시 내가 함께 작업하고 싶은 탑5 감독님 중 한 분이시다.

 
“감독님, 코우즈키(조진웅 분)는 뼛속까지 일본인이고 싶은 사람인데 왜 소바나 우동이 아닌 평냉을 먹을까요?”


내 질문에 감독님은 아주 친절하게 대답해주셨다.


“음, 그건 코우즈키가 벗어날 수 없는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미 체화되어, 바꾸고 싶어도 잘 안되는 것 중 으뜸은 입맛이 아닐까 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코우즈키의 태도가 바로 이해가 되었다. 나는 구한말의 코우즈키가 좋아할 만한 냉면을 만들기 위해 자료 조사에 들어갔다. 책으로 찾을 것은 찾고 전문가에게 도움받을 것은 받으면서 하나하나 고증을 해나갔다. 우리나라는 기록유산이 발달한 나라지만 글을 남길 수 있는 계급은 정해져 있다. 이름 없이 살다간 사람들의 삶은 상상력으로 메꿀 수밖에 없다.


단단한 고증 위에, 대본을 쓴 작가의 의도가 드러나도록 상상력을 더하고, 연출 감독, 미술감독이 원하는 그림을 만드는 게 나의 일이다. 궁극적으로는 내 작업이 배우들의 연기에 도움이 되어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이 ‘푸드 스타일리스트’라는 나의 직업적 사명이다.


내가 제대로 고증해서 재현하면 100년 뒤에라도 누군가 도움을 받을 것이고 가깝게는 내 후배들이 참고할 것이다. 한국영화가 이토록 발전한 것은 앤딩 크레딧에 이름이 올라가는 사람들 모두가 자기 분야에 최선을 다한 결과가 아닐까. 

나랏말싸미 세종과 소헌왕후의 진찬연 세팅장면
식음 공간 연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식음 공간을 연출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만 꼽는다면 ‘조화로움’이다. 업자들끼리는 ‘톤 앤 매너’라고 한다. 잘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좋은 소리를 내듯 음식, 가구, 그릇, 조명이 자기 자리에서 쓰임새에 맞게 자기 역할을 다할 때 아름다운 공간 경험이 탄생한다. 외식 업장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컨셉이 중요하다, 입지가 중요하다, 스토리 텔링이 중요하다, 이제 트렌드는 밀키트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지만 식음 공간은 결코 단편적인 슬로건으로 완성될 수 없다.

 
테이블 세팅 전문가로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꼽는다면 방법론적으로는 첫째, 테이블 아이템들이 디자인적인 통일을 이루고 둘째, 실용적이면서 심미성을 충족시키는 테이블 디자인이어야 하며 셋째, 디자이너만의 독특한 개성이 드러나야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공간을 완성 시키는 것은 사람이다. 식사 공간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를 배려하며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한 식음 공간의 요건이라고 생각한다. 

6회 세계도자비엔날레 2세대 테이블 데코레이터 3인의 ‘table story展 中 고마운 성찬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영화는 종합예술이다. 연출가의 지휘 아래 각 파트가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최선을 다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영화 현장에서 다들 모니터를 들여다보지만 분장 팀은 배우의 메이크업과 헤어를 주로 보고, 의상 팀은 배우들의 의상을 주로 보며, 나는 배우들이 약속한 메뉴를 잘 먹었는지 살핀 후, 테이크 연결을 위해 배우가 먹은 음식을 확인한다.


어느 팀 못지않게 최선을 다했음에도 우리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아직 낮은 편이다. 누가 해도 상관없는 일, 심지어 “그 영화에 음식이 나오던가?” 하는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의 책임도 있다. 커리어에 대한 욕심이 지나치다 보니, 해서는 안 될 일들을 벌이곤 한다. 선배의 일을 가격을 낮춰 가로채는 후배도 있고, 대본에 대한 이해 없이 제작팀의 오더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음식을 딜리버리 하는 친구들도 있다.


나는 이 분야에서 더 많이 인정받고, 몸값을 더 많이 올리고 싶다.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높은 위치에서 존경받으며 일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 게 내 꿈이다. 외식업 분야에서도 이 일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인테리어와 메뉴 사이를 잇고, 공간의 완성도를 높여 또 오고 싶은 장소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른다. 일반 업자들이 하는 일과, 내가 하는 맞춤형 인테리어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니 무형의 가치에 박한 것이 현실이다.


매체 노출을 자제해 왔던 내가 ‘한국인의 밥상’ 출연을 결심한 게 바로 이 때문이다. 시대극의 백숙 장면 연출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내 모습에 주변 사람은 물론 ‘한국인의 밥상’ 시청자들이 많은 공감을 표해주어서 매우 감사했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나의 직업적 꿈과 인간 김민지의 꿈은 다르다. 나의 피, 땀, 눈물이 스민 작업이 고작 몇 초 화면을 스쳐 가거나, 통편집될 때마다 제대로 된 음식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드라마는 영화와는 또 제작환경이 달라서 어려운 점이 많다. TVC와 영화의 중간 단계랄까. 금액도 너무 낮게 형성되어 있다. ‘초콜릿’처럼 제대로 금액을 책정해서 작가, 감독과 소통하며 배우 지도, 대본 수정까지 진행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고 보면 된다.


작년 겨울에 작업한 ‘킹덤 아신전’의 경우 영화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아 해볼 만했다. 이런 스타일의 작품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니 플랫폼이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음식 드라마가 나올 때도 됐다. 재작년 중국 화이사에서 진행한 ‘혀끝의 두근거림’에 참여하기 위해 4개월간 한국 요리사 2명, 중국 요리사 3명. 스타일링 팀 3명과 함께 상해에 머물렀다. 제작사는 현장에서 쓸 조리용 탑차와 메뉴 개발을 위한 주방을 제공하고, 중국요리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미슐랭 식당 투어를 진행하기도 했다.


배우들을 모아놓고 강연을 열거나, 씨즐 장면은 전문 팀에 맡겨 따로 편집하는 모습을 보며 참 많이 부러웠다. 우리나라도 ‘음식’이 아주 중요한 영화, 드라마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제대로 투자가 이루어질 것이고 보다 재미있고, 완성도 높은 음식 영상이 나올 테니까. 물론 디렉팅은 ‘꾸밈’이 맡아야 할 것이다.


디자이너를 넘어 아티스트로서 드라마, 영화, 외식업 디렉팅 어느 분야건 우리 상차림에 다양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을 나의 사명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온고지신과 인문학적인 사유다. 미래를 획득하려면 과거를 성찰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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